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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복사 터 `금당지` 추정자리. [사진 제공 = 문화재청] |
'삼국유사'에 따르면 황복사는 의상(義湘)대사(625~702)가 29세에 출가한 곳이다. 허공을 밟고 올라가 '탑돌이'를 했다는 설을 짐작하건대 목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42년 경국보 제37호 황복사지 삼층석탑을 해체 수리할 때 나온 사리함에서 '종묘성령선원가람(宗廟聖靈禪院伽藍)'라는 명문이 있어 당시 종묘의 기능을 했던 왕실사원으로 추정될 만큼 명찰이다.
과거 두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 중, 2016년 1차 발굴조사에선 제34대 효성왕(737~742)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위한 미완성 왕릉, 건물지, 남북도로 등을 확인한 바 있다. 2017년 2차 발굴조사에선 통일신라 시대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 대석단 기단 건물지와 부속 건물지 그리고 회랑, 담장, 배수로, 도로, 연못 등 신라 왕실사원임을 추정할 수 있는 대규모의 유구와 금동불상 7점을 비롯해 약 1000여 점의 유물을 출토했다.
이번 발굴에선 황복사지 삼층석탑과 함께 조영된 대석단 기단과 십이지
이번 발굴조사 결과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재)성림문화재연구원(배군열 연구원)으로 문의하면 된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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