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팝 컬처의 시대
[케이컬처 DNA] 올해 세계 대중문화계에는 역사의 분기점으로 기록될 주요 사건이 두 개 있었다.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빌보드200'에서 3연속 1위를 한 일과 넷플릭스 영화 '로마'가 미국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받은 것이다. 한 사건은 음악, 또 다른 하나는 영화에 관한 것인데 같은 맥락으로 해석 가능하다. 바로 영어가 아닌 언어로 만들어진 콘텐츠가 세계 대중문화 중심에서 선전하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다. 빌보드에 따르면 한 팀이 비(非)영어 음반으로 3연속 1위를 차지한 것은 방탄소년단이 최초이며, '로마'는 스페인어로 제작된 영화인데도 아카데미 주요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끝에 '감독상'을 비롯해 3개 부문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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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이 한국 가수 최초로 `영국 오피셜 앨범 차트 톱 100` 1위를 차지하고 트로피를 들고 있다.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
글로벌 팝 컬처 시대가 열렸다. 콘텐츠의 세계 수출을 위해선 영어 제작이 필수라는 공식은 깨졌다. 자국어로 노래하고 빌보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사례가 K팝 그룹에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스페인어로 노래하는 푸에르토리코 가수 대디 양키는 루이스 폰지와 함께 부른 '데스파시토'로 2017년 빌보드 차트를 휩쓸더니 현재도 '콘 칼마' 등으로 선전하고 있다. '로마' 외에도 비영어 영화의 주가는 나날이 상승하고 있다. 올해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상'을 차지한 '피리어드 : 더 패드 프로젝트'는 인도 농촌 마을 여성들이 편견에 맞서 생리대 제작에 나선 스토리를 담았으며 힌디어로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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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 출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연출한 `로마`는 스페인어로 제작된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올해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
소수 특출난 아티스트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장 국내에서 미국 외 지역 콘텐츠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점만 봐도 확인 가능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이 등급을 부여한 해외 콘텐츠 중 미국 외 지역에서 제작된 것은 2013~2015년 약 2600편에서 2016~2018년 약 5000편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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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유튜브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타고 퍼지는 로컬 콘텐츠
전 세계 각지에서 나온 로컬 콘텐츠가 다시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현상.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유튜브와 넷플릭스, 아마존프라임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부상이다. 일련의 채널을 통해 시청자는 다양한 언어로 제작된 영상물을 자국어 번역과 함께 볼 수 있게 됐다.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K팝 그룹의 팬은 아이돌 영상물에 자발적으로 번역을 달아 유튜브에 올려 세계로 전파한다. 넷플릭스에서는 각국 콘텐츠가 전 세계에 190여 개국에 동시 공개된다. 스타 작가 김은희가 각본을 집필하고, 주지훈 배두나 류승룡이 출연해서 이목을 집중시킨 '킹덤'이 이에 부합하는 사례다. 넷플릭스는 올해 1분기 주주 서한에 '전 세계 수백만 명의 팬들이 한국의 킹덤을 시청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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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덤`은 190여개국에 동시 공개돼 수백만 시청자를 유인했다. 국가별로 방영권 협상을 하는 번거로운 과정은 없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
한국을 포함해 팝 컬처 변방에 있었던 국가의 콘텐츠 제작자들에겐 완전히 새로운 장이 열린 셈이다. OTT(유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와 협상에만 성공하면 일일이 각국 배급사 문을 두드리는 과정은 건너뛰어도 된다.
어느 때보다 콘텐츠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훨씬 낮아진 소비자를 상대하게 됐다는 것도 이점이다. 비디오와 DVD 대여점 시대에는 영화 한 편을 감상하기 위해 1000~1만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이와 같은 콘텐츠 감상 요금은 P2P서비스와 IPTV에서도 유사하게 적용됐다. 하지만 넷플릭스, 푹, 옥수수 등 OTT 이용자는 월 6000~1만원 상당의 정액요금만 내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한다. 이전에 아랍과 인도네시아 등 콘텐츠에 도전하기 위해선 상당한 용기를 내야 했지만, 이제는 아무런 부담 없이 재생하고 취향에 안 맞으면 닫아버려도 상관없는 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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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랍어로 제작된 `지니`는 고대 도시에서 부활한 초자연적인 존재를 둘러싸고 아랍 10대 주인공들이 겪는 모험을 그린 작품이다. /사진제공=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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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스페인 오리지널 시리즈인 `엘리트들`은 공개 첫 4주만에 전 세계 2000만 이상 유료 구독 계정이 시청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
◆ K콘텐츠, 한 단계 더 도약 가능할까
한국 콘텐츠 제작자들은 글로벌 팝 컬처 시대를 공략할 방안 모색에 분주한 모습이다. 드라마와 영화 제작사는 당장 OTT에 납품할 만한 작품을 제작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름난 영화감독들은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아마존, 월트디즈니, 애플 등 OTT 사업을 확장하려는 기업에 러브콜을 받고 있으며,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팝 장르에 한국 코드를 적절히 새겨넣으면서도 국수주의적으로 흐르지 않는 균형감각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해외 시장에서 우리 영화가 장르물로 선호되는 것이나 K팝이 힙합이나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 결합으로 선호를 받는 것이 긍정적"이라며 "주류 콘텐츠 시장의 장르 문법에 아시안 코드나 오리엔탈리
정병욱 대중음악평론가는 "K팝에 관심을 보인 10대 타깃에 대한 세그먼트 비즈니스가 당면한 과제"라며 "콘텐츠 정체성을 잘 지키는 한편 현지 시장과 트렌드를 뒤따르는 맞춤형 협업을 꾸준히 지속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박창영 문화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