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아시아그룹, 에어아시아 코리아 설립 통해 韓 진출 타진
실질적 경영 예상 에어아시아, 국내항공법 회피위한 꼼수 우려
미국 등 선진국, 국가기간산업의 외국자본 진출 강한 규제
한국 정부, 외국인 자본 참여 보다 엄격히 규제 필요
지난 2003년 IMF 외환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외환은행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회사를 매각한다. 이후 6년이 지난 뒤 하나은행은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 인수를 선언했고, 올 초 론스타는 3조9000억 원에 재매각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론스타는 배당금을 더 많이 챙기기 위해 외환은행의 대출 금리를 불법으로 조작한 혐의로 논란을 빚었고, 론스타의 이같은 행태는 외국자본의 국내 유입에 따른 대표적인 폐해 사례로 손꼽히며 ‘먹튀논란’을 일으켰다.
금융업계의 론스타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국가 안보와 밀접히 관련된 기간산업인 항공부문에까지 해외 자본 유입 소문이 돌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국적의 에어아시아가 국내 투자자들과 협력해 가칭 ‘에어아시아 코리아’라는 한국 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항공시장에 진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또 지난 11월 18일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회장이 국토교통부를 방문해 에어아시아의 한국 진출 계획을 설명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 에어아시아그룹, 300억 규모 에어아시아 코리아 한국법인 설립 추진중
실제로 에어아시아는 한국 진출을 위해 자본금 300억 원 규모의 한국법인 에어아시아 코리아(가칭)를 추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존 재무적 투자자 이외에 전략적 투자자(SI) 또한 물색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 항공 업계 관계자는 “에어아시아가 30% 수준, 전략적 투자와 재무적 투자자가 나머지 70% 수준으로 지분을 구성한다는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에어아시아가 외국인 지분을 49%까지만 허용하고 있는 국내 항공법을 교묘하게 회피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재무적 투자자의 목적이 투자 수익의 극대화이고, 전략적 투자자 또한 항공사 운영 경험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항공사를 운영하게 되는 주체는 에어아시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 측은 바로 이같은 배경을 통해 에어아시아 코리아가 설립된다면 항공법 위반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현행 항공법에는 항공사의 외국인 지분을 49%까지만 허용하고 한국인이 기업을 지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외국인 지분이 1/2 이상이거나 외국인이 사업을 지배하는 기업인 경우 등에는 항공사 면허를 주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만약 에어아시아 코리아가 설립되면 항공사 운영 경험이 전무한 국내 재무적 투자자와 전략적 투자자들보다는 에어아시아가 실질적인 경영에 나설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에어아시아의 지분이 49% 이상이 되지 않더라도 항공법상 면허를 받을 수 없는 결격사유가 될 수도 있다.
◆ 에어아시아 코리아 설립, 운수권 배분될 경우 국익유출 우려
더 큰 문제는 한국 항공사들만 누릴 수 있는 운수권을 에어아시아 코리아가 마음대로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국가의 권익인 운수권이 사실상 외국항공사에게 배분되면, 아무런 제약 없이 한국 이원 국제선, 한국 발착 제 3국 노선, 심지어는 국내노선까지 운영할 수 있게 돼 국익 유출까지 우려된다.
국내 항공업계는 만약 에어아시아 코리아가 설립이 허용된다면 막강한 자금력을 갖춘 외국 대형 저가항공사의 국내법인 설립이 줄을 잇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울러 막강한 자금력을 갖춘 이들과의 경쟁으로 막 자리잡기 시작한 국내 저가 항공시장뿐만 아니라 국가 기간사업의 하나인 항공시장 전반에 큰 위기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 미국 등 선진국, 국가기간산업=국가 생존권 인식..외국 자본 철저 규제
그렇다면 혹시 국내 항공업계의 이같은 입장은 과한 기우인 것일까.
선진국에서는 항공, 항만, 철도, 전력, 금융 등의 국가 기간산업을 국가 생존권의 기반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외국인의 지배를 철저히 규제하고 있다. 열강의 식민지 침탈의 역사적 사례를 보더라도 철도, 전력 등의 핵심 기간산업부터 장악하곤 했다.
특히 자유로운 시장 질서를 강조하는 미국에서조차 국가의 전략•기간산업에 대해서는 외국인 투자 등에 엄격한 규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지난 2005년 두바이의 두바이 포트 월드(Dubai Ports World)사가 뉴욕 등의 6개 항만시설을 인수하려고 했을 때, 미국 정치권은 항만시설이 국가의 기간산업인 점을 들어 정치적으로 압박해 인수를 저지했다.
2006년 영국의 버진 애틀랜틱 항공(Virgin Atlantic Airways)이 미국 국내선 운항을 위해 최대 허용지분인 25%를 출자해 버진 아메리카를 설립하자 미국 정부는 영국의 모기업이 경영을 주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17개월 동안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결국 모 회사와 금융상의 모든 관계를 끊고, 버진 애틀랜틱이 고용한 최고경영자를 해고하고, 버진 아메리카의 이사회 멤버를 제한하는 등의 강력한 규제조치 이후에 승인을 해준 바 있다.
미국 정부는 더 나아가 주요 인프라 시설 및 기업 등에 대한 외국인 투자와 인수를 더욱 강력히 규제하고자 2007년 외국인 투자 및 국가 안보에 관한 법률(The Foreign Investment and National Security Act)을 개정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외국 정부가 거래를 주도하거나, 주요 인프라 시설이 외국인 지배 아래 놓이게 되는 경우에는 9명의 관계장관으로 구성된 위원회(CFIUS Committee on Foreign Investment in the US)에서 심사하고, 그 결과를 의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아울러 위원회는 심사 결과에 따라 계약내용 변경을 요구하거나, 조건부로 허가하는 등의 조치도 가능토록 했다.
최근 중국 기업인 럴스사(Ralls Corp.)가 미국 오리건주의 풍력발전 시설 자산을 인수하자 위원회에서는 럴스사에 투자 내역 자진보고와 운영 중단을 요청하고 조사를 실시했다. 이후 해당 시설의 풍력발전기가 미 해군 무기 훈련시설의 공역에 위치한다는 점을 들어 오바마 대통령에게 투자 무효 및 철거 권고를 했고, 이에 오바마 대통령은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행정명령을 통한 자산매각을 권고했다. 럴스사는 이에 불복하는 소송을 했으나 올해 2월 미 지방법원에 의하여 기각됐다.
미국 진출을 노리던 한국 금융사도 제재를 받은 적이 있다. 지난 2008년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소규모 지방은행인 커먼웰스(Commonwealth) 은행의 인수를 추진하던 하나은행이 승인을 보류 당했던 것. 이유는 당시 하나은행의 최대주주가 싱가포르의 국부펀드인 테마섹 홀딩스(Temasek Holdings)였기 때문이었다.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도 전략•기간산업에 대한 외국 자본 규제는 엄격하다. 그 동안 중국은 외국 자본이 자국에 직접 투자 형태로 기업을 설립해 다시 해외로 상품을 수출하는 것조차 허용할 만큼 자유로운 무역을 강조해 왔지만 국가전략산업 부문 기업의 소유권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규제를 계속했다. 외국인이 이들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거나 경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한 것.
올해 5월 에너지절감•친환경산업, 신세대 정보기술산업, 바이오산업, 첨단장비 제조산업, 신에너지산업, 신재료산업, 차세대 자동차산업 등 7대 국가 전략 신흥산업 발전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들 산업에 대한 중요성과 외국 자본에 대한 규제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 한국 정부, 외국 자본 관련 법적 규제 면밀한 대응 및 엄격 규제 필요
이에 반해 한국 정부의 대응은 미약한 편이다. 한국은 국가 전략•기간산업에 대한 외국 자본 침투에 상대적으로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현재 국가 전략•기간산업에 대한 외국인 자본 참여의 현황과 법적 규제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고, 이에 대한 외국인 자본 참여를 보다 엄격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주요 국가 전략•기간산업에 대한 외국자본 투자 사전 심의절차가 필요하다. 정부 주도의 외국인 투자 심의위원회 등을 설치해 국가전략산업 및 중요 기간시설에 대한 외국 자본의 투자가 진행될 때 사전 심의는 물론 국가안보 및 공익 측면의 영향을 심사해 이를 승인하는 절차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
기간산업인 항공 부문도 마찬가지다. 항공 선진국들은 항공 부문이 국가안보적 중요성이 높은 산업이라고 규정하고 타 산업보다도 외국인 진출을 더욱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이에 훨씬 못 미치는 규제를 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미국은 의결권 주식의 25% 미만, 일본은 1/3 미만에 한해 외국인 지분을 허용하며, 중국도 동일인의 최대 지분 한도를 25%로 제한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외국인 지분을 49%까지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 항공주권 및 국내 항공 산업 보호를 위한 항공법 개정이 시급하다. 외국자본의 국내 항공사 지분제한을 기존 1/2 미만에서 1/4 미만으로 한층 더 강화하는 항공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 계류 중인 바 조속한 처리가 이뤄져야 하며, 외국 거대 항공사들의 편법적 시장진입 시도 차단을 위해 사실상 지배의 개념도 구체화해야 한다.
◆ 해외 자본 유치는 필요..국가 전략산업에 자유로운 침투 방관 곤란
물론 국내 산업의 전반적 발전을 위해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것은 중요하다.그렇지만 외국인이 우리나라의 전략산업과 기간시설에 자유롭게 침투하는 것을 방관하는 것은 곤란하다. 특히 외국 정부를 등에 업은 자본이 중요 기업체나 기간 시설을 인수하고자 할 경우 엄격한
중요한 국가산업이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의 바탕이 될 수 있도록, 아울러 외국인의 손에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보다 적극적인 정책 시행과 법제도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매경닷컴 장주영 기자 semiangel@mk.co.kr] 매경닷컴 여행/레저 트위터_mktour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