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노벨 물리학상 발표를 앞두고 한국 연구진 공동 수상 가능성이 점쳐졌다. 힉스입자 때문이었다. 힉스입자 발견이 노벨상으로 결정되면, 이를 발견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수상할 가능성이 컸고 발견에 기여한 한국 연구진도 수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힉스입자 흔적은 한국 연구진이 개발해 장착한 뮤온검출기에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힉스입자 발견은 이를 예측한 물리학자 3명에게 돌아가 공동 수상의 영예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한국은 미국, 일본, 중국, 유럽 등 거의 대부분 나라들이 갖고 있는 입자물리연구소 없는 척박한 연구 환경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CERN에는 아틀라스와 CMS 등 4개 대형검출기가 양성자 충돌을 분석하고 있다. 이중 4300여명으로 구성된 CMS팀에는 한국 연구진 80여명이 참여해 함께 연구하고 있다. 한국 연구진을 이끄는 최수용 단장(고려대 물리학과 교수)은 "오는 2018년도부터 LHC에 차세대 검출기인 '가스전자검출기(GEM·Gas Electron Multiplier)'가 적용된다”며 "양성자 충돌 후 나타나는 뮤온 성질을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뮤온은 양성자가 충돌해 붕괴될 때 발생하는 소립자로 수명이 50만분의 1초에 불과하다. 찰나의 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뮤온을 측정하면 힉스입자처럼 이제껏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입자 흔적을 찾아낼 수 있다.
새롭게 가동되는 LHC에 적용하기 위해 한국 연구진은 미래창조과학부 지원으로 기존 뮤온검출기를 업그레이드했다. 2년 전 CMS 한국팀을 이끈 박인규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는 "암흑물질 증거를 찾을 때도 뮤온이 큰 역할을 해낼 것”이라며 "뮤온 운동량과 휘어지는 각도를 보다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도록 향상된 검출기로 지난해 여름 장착을 마쳤다”고 말했다.
2018년 다시 한번 업그레이드 된 LHC에는 현재 개발 중인 GEM이 장착된다. GEM은 뮤온 성질을 현재 검출기보다 더욱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데 한국이 아니면 만들 수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GEM을 만들 수 있는 원천기술은 탁월한 반도체 식각기술(화학 용액을 이용해 실리콘 웨이퍼 특정한 부분만 남겨놓고 제거하는 기술)을 활용해야만 가능한데, 이 분야에서 한국 기술력이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GEM에 들어가는 '젬 호일'도 국내 중소기업인 메카트로닉스가 개발했다. 젬 호일은 얇은 막에 구멍을 뚫어 입자를 수
최수용 단장은 "반도체 기술에 특화된 한국만이 할 수 있다고 판단해 5~6년 뒤 미래를 내다보는 차원에서 기술개발에 돌입했다”며 "전 세계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은 흔적을 남긴 힉스입자처럼 새로운 입자 발견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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