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국산 수출자 포니의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포니정’ 고(故) 정세영 명예회장이 21일 타계 10주기를 맞는다. 정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넷째 동생으로 한국 자동차 산업의 선구자이자 자동차 산업 해외 진출의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사실 그는 기업인이 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마이애미대학에서 정치외교학 석사를 받은 정치지망생이었다. 석사를 마친 후 국내 한 대학에서 교수직을 제안받았지만 큰 형인 정주영 회장이 ‘교수하면 배고파’라고 만류하며 사업을 같이 하자고 제안해 1957년 현대건설에 부장으로 입사한다.
미국 유학 경험으로 영어가 능통하고 글로벌 감각을 갖췄던 정 명예회장은 현대건설 초대 방콕 지점장으로 부임해 국내 건설업체의 해외진출 1호인 타국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했다. 1967년 12월 현대차가 설립되자 정 명예회장은 초대 사장으로 선임됐고, 포니 신화를 진두지휘했다. ‘국민차’로 불리던 포니의 이름을 따 ‘포니정’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32년 간 현대차를 키워온 정 명예회장은 1999년 현대차와 결별한다. 1998년 말 기아차를 인수한 현대그룹이 자동차 부문 구조조정안을 발표하면서 정몽구 당시 현대그룹 공동회장에게 현대차 회장직을 넘기면서 사실상 경영에서 손을 떼게 된 것이다. 현대가(家)의 장자 상속 전통에 따라 현대차를 조카인 정몽구 회장에게 승계하고 현대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겼다. 처음 인연을 맺은 건설업으로 복귀한 정 명예회장은 현대가의 어른으로 버팀목 역할을 하던 중 2005년 5월 21일 작고했다.
정 명예회장은 2000년 11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정주영 회장이 “몽구가 장자인데 몽구에게 자동차를 넘겨주는 게 잘못됐어?”라고 반문하는 바람에 아들인 정몽규 당시 현대차 부회장과 함께 자동차 인생을 끝낼 수 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큰 형님이 떠나라는 거북한 말을 하기 전에 미리 떠났어야 했고, 그러지 못한 게 죄송스러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 명예회장은 또 “열악한 환경에서 자동차에 인생을 걸고, 오늘 날 현대차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자동차 회사로 성장하도록 맡은 일을 다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고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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