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6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39살의 재정경제부 서기관이 본부의 호출로 급거 귀국했다. 금융·기업구조조정개혁반장을 맡은 그는 대우그룹 해체와 은행합병을 진두지휘했다. 한국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을 거쳐 한국EMI뮤직 임원을 하고 있던 동갑내기도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사무국장으로 발탁돼 응급실과도 같았던 한국 경제의 수술을 집도했다. 당시 소장파 경제학자였던 38살의 교수는 금융개혁법안 대책반 자문위원을 맡아 은행 합병을 주도했다. 18년후 그 서기관은 기업 구조조정 컨트롤타워인 금융당국의 수장이, 젊은 집도의는 기업 구조조정 실무총책이 될 연합자산관리(유암코) 대표가 됐다. 당시 소장학자는 금융연구원장을 거쳐 최근 우리은행 민영화 등을 주도하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을 맡았다.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이성규 유암코 대표 그리고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공자위 민간위원장)가 이들이다. 환란 극복의 최일선에서 고군분투했던 3인방이 최근 서울 태평로 금융위원회에서 특별 좌담회를 열고 기업발 경제위기 대응 방안을 찾기위해 머리를 맞댔다. 노영우 매일경제신문 차장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회에서 이들은 “기업발 부실이 국가경제 전반의 시스템적 리스크로 번지지 않도록 선제적인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며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기업, 금융계 전반이 구조조정에 나설 적기”라고 입을 모았다.
사회=좀비기업 문제가 경제 전반의 시스템 위기로 번질 수 있다.
▶임종룡 위원장=정상기업과 한계기업 간의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 부채비율이나 이자보상배율 면에서 한계기업과 정상기업간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위기가 닥치면 늦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교훈에 따라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특히 미국 금리인상, 신흥국 위기, 중국 경착륙 가능성 같은 대외적 불확실성으로 한계 기업에 대한 대응이 더욱 중요해졌다.
▶윤창현 교수=오염물질이 강으로 들어오는데 갯벌에서 걸러주면 바다가 오염되지 않는다. 갯벌이 금융시스템이다. 금융시스템에서 좀비기업을 잘 걸러주면 시스템 위기로 번지지 않는다. 지금처럼 금융시스템이 버틸 수 있을 때 서둘러 손을 대야지, 더 늦어지면 갯벌 격인 금융시스템마저 안 좋아져 더 힘들어진다고 본다.
▶이성규 사장=저성장 국면에 진입할 수록 한계 기업을 신속하게 갱생·청산해 실수요자로 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중국발 성장률 하락이나 미국 금리인상 같은 쇼크 역시 한계기업 적체가 많으면 작은 충격에도 금세 어려움에 빠진다. 시스템 위기가 오기 전에 체계적으로 기준을 높여 정리해야 한다.
▶임=한계 기업은 화약이다. 한계기업에 따른 위기가 현실화되지 않은 것은 화약이 아직 터지지 않았다고 안심하는 것과 같다. 이 화약에 불을 붙일 수 있는 게 미국발 금리인상이나 신흥국 위기, 중국 경착륙 등이다. 이같은 대외적 불확실성은 아직 현재화되지 않았지만 현재화할 가능성에 점차 다가서고 있다. 지금의 국내 경제 상황과 한계기업 상황, 금융권의 감내여력 감안했을 대 지금이 구조조정의 적기다.
사회=구조조정의 시기와 강도 그리고 방법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은가.
▶임=정부는 세 가지 원칙 하에 구조조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먼저 은행이 엄정하게 기업 신용위험을 평가해야 한다. 두번째, 기업의 자구노력을 전제로 정상화 방안을 모색한다. 세번째는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집행한다. 구조적 불황 국면인 기간산업과 일반 대기업그룹, 중소기업그룹 등 세 영역별로 구조조정 방식을 적용하겠다. 특히 기간산업은 금융위원장과 각 부처 부기관장이 참여하는 정부 내 협의체에서 수급 상황, 경쟁력 판단, 향후 경기전망, 경영진의 태도 등을 두루 논의하고 금융감독원과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이 현장에서 보는 기업의 실상을 정부 협의체에 제공할 것이다. 정부 협의체의 견해에 입각해 채권은행들은 개별 기업의 문제를 결정할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구조조정 시장을 키우겠다. 앞으로 유암코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구조조정 시장이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다. 1980년대~1990년대는 정부 주도로 산업 합리화 조치에 따라 업종별 정리를 했다. 외환위기 이후 새로 만들어진 규칙은 채권은행단 중심의 구조조정 방식이다. 하지만 이게 여러 상황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어 시장 친화적인 방법에 의한 구조조정 방안 모색하게 됐다. 유암코가 구조조정 펀드를 조성해 채권은행들의 부실기업을 구조조정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윤=모든 기업은 궁극적으로 돈이 없어서 망한다. 모든 환자는 심장이 멎어서 운명을 달리하듯. 의사는 이에 앞서 혈압과 맥박, 체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환자를 진단하듯, 은행 역시 기업의 여러 요소를 살펴야 한다. 따라서 진단을 받는 기업이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상태를 드러낼 생각을 해야지, 무작정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푸념해선 안 된다. 다만 피평가자인 기업이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는 반드시 필요하고 이런 기준에 대한 합리성과 정확한 적용이 중요하다.
▶임=기업신용위험평가에서 한계기업 선별할 것이다. 은행들이 재무적 요소인 이자보상배율 등뿐 아니라 비재무적 요소, 즉 오너의 경영능력과 산업의 성장 가능성, 지배구조의 문제까지 선별한다. 해당 기업을 가장 잘 아는 곳은 거래은행이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은행이 단기적 수익성에 치중하면서 재무적 요소만을 보면 워낙 저금리라 가급적 처리를 늦추게 된다. 처리하는 순간 은행 손실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은행이 이걸 적기에 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 언제는 우산 뺏지 말라고 하고, 언제는 좀비기업 솎아내라고 하는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라는 지적이 있는데 이는 상충되는 얘기가 아니다. 어려울 때 우산을 뺏지 않고 우산을 나눠주려면 우산을 은행에서 많이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계기업을 빨리 정리하면 일시적 위기 기업에 우산을 줄 수 있다. 이 판단 역시 은행이 한다. 이 판단을 제때 하도록 인센티브를 주고 감별능력, 여신심사 능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은행연합회 내에서 태스크포스(TF) 팀을 만들고 준비하고 있다.
▶윤=최근 한 은행 간부 교육 갔더니 기업금융 전문가를 아무도 안 하려고 한다더라. 기업 안 좋아지면 책임져야 한다고. 현장에서 기피 증세가 있다.
▶임=구조조정의 원칙 중 자구노력을 전제로 한 경영정상화가 중요하다. 자구노력 대상에는 기업뿐 아니라 이해관계인들, 노조 등 이런 이들까지 기업을 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구조조정을 신속히 해야 한다는 점과 관련해, 부실기업이 우리 경제에 하나의 불안 요인으로 잠재되지 않도록 빠른 시일 내에 시장에 납득이 갈 수 있도록 추진해야 한다. 기업 구조조정은 아프고 힘들고 복잡한 과정이다. 많은 이해관계인들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즉, 화약을 제거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폭발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이런 부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은행 등 금융회사의 자세가 중요하다. ‘왜 내가 있을 때 이 일을 해야 하느냐’ 이런 의식으로는 못 한다. 엄정한 신용평가 잣대를 갖고 살릴 기업과
[특별취재팀 = 노영우 차장 / 박준형 기자 / 전범주 기자 / 정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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