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레미콘 기업인 유진그룹이 옛 동양그룹의 지주사였던 ㈜동양 인수에 사실상 성공했다. 건빵 제조기업 영양제과공업으로 출발한 유진그룹을 1985년부터 물려받아 거침없는 인수·합병(M&A)으로 재계 40위권까지 끌어올렸던 유경선 회장의 리더십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할지 재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진그룹은 ㈜동양 2대주주인 파인트리자산운용이 보유한 지분 10.03%를 972억원에 사들이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로써 유진그룹의 지분율은 유진기업(9.80%)과 유진투자증권(3.22%) 보유 지분을 더해 총 23.05%로 늘었다. 지분 취득 후 남은 주요주주는 삼표그룹(3.19%)이 유일하다.
유진그룹은 ㈜동양을 인수하면서 막강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단순 숫자만 놓고 봐도 자산 1조4000억원인 유진기업에 ㈜동양의 자산 1조2000억원이 더해지면 자산 규모 2조6000억원의 거대기업으로 탈바꿈한다. 시멘트·레미콘업계 1위인 쌍용양회(2조9000억원)를 위협하는 규모다.
㈜동양은 동양그룹 시절 지주사 역할과 함께 레미콘 건설소재 섬유 등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주요 계열사인 동양시멘트가 업계 3위권의 강자였기에 시너지를 노린 포석이었다. 하지만 동양그룹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산업군은 아니었다. 더구나 동양그룹이 해체된데다 동양시멘트가 삼표그룹에 인수되자 시장에서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동양그룹 시절 확보해 둔 부동산과 영업력은 무시못할 자산이다.
레미콘 사업만 놓고 보면 유진기업은 기존 29개 공장에 ㈜동양이 보유한 공장 24개를 더해 전국적으로 53개의 공장을 보유하게 된다. 유진기업의 공장들은 수도권과 강원, 충청, 호남에 분포돼있던 반면 ㈜동양의 공장은 부산, 울산, 창원 등 영남권에 상당수 있다. 명실상부한 ‘전국구’ 영업망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생산량이 늘어나니 시멘트 등 원재료 구매력과 가격경쟁력이 높아진다. 유진기업의 최대 경쟁자인 삼표산업의 전국 레미콘 공장 수는 자회사 포함 27개다.
건설, 플랜트, 섬유 등 ㈜동양에서 보유하고 있던 비(非)레미콘 분야 사업부의 경쟁력도 유진그룹의 관리 하에 제고될수 있다.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신사업에 도전중인 유진그룹 입장에서 ㈜동양의 기타사업부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 중심으로 인수·합병(M&A) 전략을 짤 수 있다. 실제 유 회장은 지난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이후 그룹 미래 먹거리 확보, 계열사간 시너지 등 ‘큰 그림’을 그리는 업무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양 인수 역시 레미콘 분야 시너지는 물론, 종합 건설소재 전문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 업계 관측이다.
유진그룹 입장에서 남은 과제는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기 위해 대표이사 등 경영진을 파견하는 일이다. 현 경영진은 ㈜동양이 법정관리를 졸업하기 직전 법원이 선임한 관리인들로 구성돼있다. 유진그룹은 서두르지 않고 현 경영진의 경영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일각에서는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머지않은 시기에 경영진을 파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유진그룹이 이번 지분 인수를 통해 책임경영 의지를 보인 만큼 적대적이었던 소액주주들도 일부 우호적으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정기주주총회에서 유진그룹이 파인트리운용과 공동 의결권을 행사하자 소액주주들은 실제 지분 인수로 의지를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유진그룹은 5000억원에 달하는 현금성자산을 보유한 채 뚜렷한 대주주 없이 법정관리를 졸업한 ㈜동양을 인수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꾸준히 지분을 확보해왔다. 경영권 분쟁 초기에는 유진그룹과 파인트리운용이 경쟁 양상을 보였으나 적대적 M&A 목적이 없던 파인트리운용이 유진그룹과 공동 전선을 형성하면서 ㈜동양 현 경영진과 유진·파인트리운용의 대결 구도로 전환됐다. 지난 3월 ㈜동양의 정기 주주총회에서 유진그룹은 경영권 확보를 위해 추천 이사 파견을 시도했지만 결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무산됐다. 유진그룹이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해 향후 ㈜동양 지분을 추가로 취득할 가능성도 있다. 정진학 유진기업 사업총괄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지분율을 25%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경영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편 유 회장은 이번 지분 인수와 관련해 직원들에게 ‘서두르지 말 것
[정순우 기자 /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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