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업체들이 3분기 석유화학 사업에서 양호한 실적을 낼 것으로 예상되면서 화학산업의 몸집줄이기가 필요하다고 했던 정부의 구조조정 방안이 힘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5일 증권·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구조조정 방안에서 공급과잉이라고 지목했던 테레프탈산(TPA), 합성고무, 폴리염화비닐(PVC)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이 사업에서 이익을 남길 전망이다. 이 품목들의 원료인 에틸렌·부타디엔을 생산하는 납사분해설비(NCC)의 수익성이 개선됐기 때문이다.
유가가 높았던 시절 미국 화학업체들이 셰일가스를 활용하는 에탄분해설비(ECC)를 증설하면서 원가 경쟁력에서 밀리는 NCC를 가동하는 국내 업체들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유가 하락으로 원재료 가격 차이가 사라지면서 산출되는 제품 수가 더 많은 NCC가 기업에 더 많은 이익을 안겨주고 있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올해 7월 이후 NCC의 에틸렌 제조원가가 ECC보다 낮아지기 시작했다”며 “ECC는 에틸렌 이외 제품을 거의 생산하지 못하지만 NCC는 에틸렌을 비롯해 프로필렌(PP)·부타디엔(BD·합성고무 원료) 등까지 생산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대표적인 NCC 가동 업체는 LG화학, 한화케미칼, 롯데케미칼 등이다.
석유화학 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롯데케미칼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나금융투자는 롯데케미칼이 3분기 매출액 3조7000억원, 영업이익 6446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21.9% 33% 증가한 수치다.
윤 연구원은 “올해 4분기에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가량 많은 595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이라며 “삼성그룹으로부터 사들인 롯데첨단소재와 10월부터 가동을 시작하는 초경질유 분해설비의 실적이 반영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롯데케미칼은 구조조정 품목 중 TPA와 합성고무를 생산하고 있다.
한화케미칼은 3분기에는 석유화학·태양광 사업 모두 좋은 실적을 거두지만 내년부터는 태양광 사업의 부진을 석유화학 사업이 만회할 것으로 전망됐다. 한승재 동부증권 연구원은 “한화케미칼은 3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3.3% 늘어난 2조3260억원,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84.4% 증가한 2460억원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태양광 제품들의 평균판매단가는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한화케미칼은 가격이 높을 때 미국 에너지기업 넥스트에라와 대규모 물량 공급을 체결해 둬 태양광 사업의 실적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오는 11월 계약 물량 공급이 마무리된 뒤에는 태양광 사업의 실적 하락이 불가피하고 이를 석유화학 사업이 만회할 것으로 동부증권은 예상했다. 한화케미칼의 주력 화학제품은 TPA와 PVC이다.
LG화학은 석유화학 사업에서 거둔 호실적을 신사업인 배터리가 갉아먹고 있는 모양새다. 교보증권은 LG화학이 3분기에 매출액 5조1993억원, 영업이익 4949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1년 전에 비해 매출액은 0.4%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9.4% 감소한 수치다.
손영주 교보증권 연구원은 “LG화학의 석유화학 사업은 호실적을 지속하지만, 중대형 전지 사업은 미래 투자비용이 증가해 실적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LG화학은 정부가 구조조정 대상 품목으로 지목한 4개 품목 중 PVC, 합성고무, 폴리스티렌(PS) 등 3개 품목을 생산하고 있다.
정부가 구조조정 대상으로 지목한 품목을 생산하는 기업들의 해당 사업 실적이 양호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정부의 진단이 잘못됐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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