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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츠모토 히로시 이사장 <사진제공=한국기초과학연구원> |
일본 과학 분야 노벨상의 산실로 불리는 ‘이화학(理化學)연구소’의 마츠모토 히로시 이사장(74·사진)이 지난 17일 대전에서 열린 한국기초과학연구원 창립 5주년 행사에 참석해 기초과학 연구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과학자들뿐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가 지녀야 할 인내심을 강조했다.
1917년 설립된 이화학연구소는 일본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기초과학 핵심 연구소로 내년 창립 100주년을 맞는다. 교토대 공대 교수와 총장을 거쳐 지난해부터 이 연구소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마츠모토 씨는 자기 앞에 높인 종이에 ‘無用而用(무용이용·쓸모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용한 것)’이라는 한자어를 직접 써서 기자에게 보여줬다. 그는 “기초과학자들이 진행하는 연구가 지금 당장은 쓸모 없을 것 같지만 이 연구의 결과는 나중에 어떤 힘을 발휘할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며 “기초과학의 위대함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히로시 이사장은 또 기초과학이 발전하려면 ‘미과학(未科學)’적인 발견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미(未) 과학은 비(非) 과학 즉, 과학이 아닌 것이 아니라 아직 과학이 되지 못한 것일 뿐”이라며 “젊은 과학자들은 새로운 과학에 도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젊은 과학자들이 연구비에 목말라 당장 응용과학 분야에만 몰두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자기 전공 분야에만 매달리는 한계도 극복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화학연구소는 일본 유일의 ‘학제간 공동 연구’를 지원하는 곳”이라며 “자기와 다른 분야를 전공하는 과학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공동 연구를 진행해야만 의미 있는 성과물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아시아에서 과학 분야 노벨상을 휩쓸고 있는 일본의 저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한 조직에서 주로 명령에 따른 상하 관계로 움직이는 일본 풍토에서 어떻게 창의적인 과학 연구 성과가 많이 도출되는지 궁금했다. 이에 대해 마츠모토 이사장은 “일본의 과학 연구 문화에선 그런 상하 관계가 일절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과학자를 지원하는 정부나 기업도 성과나 연구비를 무기로 과학자를 압박하진 않는다는 얘기다.
그는 과학 분야 노벨상을 아직 손에 쥐지 못한 한국을 겨냥한 듯 의미심장한 말도 던졌다. 마츠모토 이사장은 “한국이 노벨상을 원한다면 오히려 그 누구도 노벨상을 노리고 연구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그는 “물론 노벨상이 좋은 상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최고의 상은 아니다”며 “노벨상을 위해서 연구를 한다면 오히려 노벨상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과학 분야 정부 과제를 마련할 때에도 과학자 스스로 발의한 연구가 채택될 수 있는 ‘상향식(bottom-up)’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최근 국내 과학계에선 정부 과제 가운데 과학자들이 자발적으로 제안한 연구가 거의 없다며 이를 늘려 달라는 학자들 청원이 쇄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마츠모토 이사장은 “현재 일본에선 하향식(top-down)과 상향식 과학 연구 과제가 5대5 비중으로 나눠져 있다”며 “하향식 일변도의 과학 연구 지원책은 특히 기초과학 분야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젊은 과학자 육성을 위해 대학과 연구기관 사이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대전 = 서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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