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7%에서 2.4%로 뚝 떨어뜨렸다. 그러면서 국정 공백 장기화에 따라 중요 정책 결정이 지연되면 이보다 더 후퇴한 2.0%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KDI는 7일 내놓은 2017년 경제전망을 통해 미국 금리인상과 보호무역주의 기조로 주요국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신흥국에서 금융 위기가 발생하게 되는 등 해외발 충격으로 인해 한국 경제 성장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KDI가 제시한 내년 성장률 전망치 2.4%는 지난 5월 대비 0.3%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이는 한국은행(2.8%)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2.6%), 한국금융연구원(2.5%), 현대경제연구원(2.6%)보다는 낮고 LG경제연구원(2.2%), 한국경제연구원(2.2%) 전망치보다는 약간 높은 수준이다. 일부 민간 연구소와 한국은행은 조만간 기존 발표치보다 낮은 수정 전망치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KDI는 그러나 이번에 내놓은 경제 전망 조정치에는 2개월 이상 이어진 ‘최순실 게이트’에서 비롯된 국내 정치 혼란을 감안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정치발 충격으로 인해 현재 전망보다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정규철 KDI 거시경제연구부 연구위원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가계 입장에서는 저축을 늘리고 기업은 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을 미뤄 만일의 상황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며 “생산도 축소되고, 그에 따라 노동 수요 및 공급도 줄어 경기 전반이 가라앉는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경기가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수 있임을 경고한 셈이다.
KDI 분석에 따르면 내년 12월로 예정된 19대 대통령선거를 조기 퇴임 또는 탄핵 결정 등으로 인해 상반기중으로 앞당겨 치르는 것은 경제에 큰 영향을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선 이벤트로 영향을 받는 방송·출판업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해 전체 경제에 파급력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치 불확실성이 초래할 경제 후폭풍이다.
김 부장은 “대선까지 진행되는 과정이 불확실하다는 점이 경제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경제가 총체적난관에 빠진 가운데 경제콘트롤타워의 확고한 정립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KDI는 내놨다.
KDI는 이날 재정 통화 금융정책 조언에 그쳤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구조개혁 노동시장 규제 경쟁정책까지 총 망라해 정책 권고를 내놨다.
김성태 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경제는 경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지금 진행 중인 정치적 불확실성에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출산·고령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메가 트렌드 속에서 어떻게 경제정책을 이끌어 갈지도 중요하다”며 “경제정책은 제 갈길을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KDI는 내년에도 수출 증가세가 미약할 것으로 예상돼 제조업 가동률이 낮은 상태에 머물고 설비 투자 회복세도 낮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국제유가 상승으로 실질소득 개선폭이 줄면서 ‘코리아세일페스타’ 등 정부 정책으로 이끌어온 민간소비 증가세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정치 혼란이 상당기간 지속될 경우 가계 소비위축, 기업 투자 지연으로 이어져 생산과 노동수요에 악영향을 끼져 내수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KDI의 내년도 전망을 부문별로 보면 물량기준 수출이 소폭 늘어나 경상수지는 대규모 흑자 추세가 유지될 것으로 봤다. 다만 국제유가 상승으로 흑자폭은 축소될 것으로 봤다. 내년도 유가를 두바이산 기준으로 올해보다 17% 오른 배럴당 48달러로 예상하면서, 내년 경상수지 흑자폭도 올해 983억달러에서 126억달러 줄어든 857억달러로 예측했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2.0%로 올해보다 0.4%포인트 낮게 잡았다.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가계의 실질소득 개선 효과가 줄어드는데다 ‘코리아세일페스타’ 등 올해 진행한 소비활성화 정책 효과가 수치상으로 사라지면서 증가세가 약화될 것으로 봤다.
총고정투자는 올해 4.4% 증가에서 내년에는 3.6% 증가로 분석됐다. 제조업 가동률이 낮은 수준으로 하락하고 있고 설비투자 회복세는 제한적인 게 증가세 둔화의 요인으로 꼽혔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치인 2.0%에 한참 못미친 1.3% 상승으로 내다봤다. 낮은 기대인플레이션과 성장세 완화가 올해와 같은 1%대에 그치는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김성태 부장은 “2017년 말에는 물가가 지금 수준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며 “자칫 2018년에
실업률도 올해보다 소폭 상승한 3.9%로 예상됐다. 내년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들고 제조업 부진이 계속되면서 2017년 취업자 수 증가 폭은 올해 30만명 안팎에 비해 축소된 20만명대 후반대로 분석했다.
[김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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