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쌓인 눈 위를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스키. 스키를 타고 빠른 속도로 언덕을 내려오면 강한 공기 저항을 느끼게 된다. 우리 몸에서 공기 저항을 가장 많이 받는 부위는 어디일까. 평창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한인 과학자가 포함된 일본 연구진이 '활강의 비밀'을 밝혀냈다. 비밀은 '종아리'에 있었다.
일본 쓰쿠바대 건강스포츠과학연구소 아사이 다케시 교수와 쓰쿠바대 휴먼하이퍼포먼스 첨단연구센터 홍성찬 교수 공동 연구진은 활강 자세에서 스키 선수의 신체에 따라 발생하는 공기 저항의 크기를 분석하는데 성공했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인 '유로피안 저널 오브 피직스' 최신호에 게재됐다.
가파른 경사면을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알파인 활강의 경우 스키선수의 순간 속도는 시속 120~140km를 넘나든다. 스키 선수들은 물론 스키를 즐기는 일반인들은 공기 저항을 최소화 하기 위해 무릎을 구부리고 허리를 숙이는 '크라우치 자세'를 만든다.
크라우치 자세시 발생하는 공기의 저항 연구는 일반적으로 '풍동실험'을 통해서 이뤄졌다. 크라우치 자세를 취한 뒤 앞쪽에서 강한 바람을 불어 공기의 저항이 얼마나 큰지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기존 연구는 스키 선수의 신체 각 부위에서 만들어지는 공기 저항이나 공기 소용돌이(와류)를 알 수 없었다. 전체 저항보다 활강시 신체 특정 부위에서 공기 저항이 얼마나 발생하는지를 확인하면 선수들의 자세 지도, 스포츠 용품 개발 등에 보다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격자볼츠만법'을 적용했다. 격자볼츠만법이란 거시적인 관점에서 액체나 기체의 연속적인 흐름을 분석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보다 작은 '격자' 크기에서 물체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방식이다. 홍성찬 교수는 "현재 다운힐 전 유럽챔피언 선수의 크라우치 자세를 그대로 본딴 마네킹을 만든 뒤 풍동실험실에 넣고 데이터를 분석했다"며 "기존에 풍동실험을 통해 얻은 분석과 격자볼츠만법을 통한 컴퓨터 유동 분석 결과가 비슷하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이 새롭게 도입한 분석방식이 기존 연구와도 일치함을 의미한다.
연구진은 이 방식을 토대로 스키 선수가 초속 40m(시속 120km)의 속도로 활강할 때 신체 각 부위의 공기 흐름 속도를 모델링하는데 성공했다. 선수의 정면으로 바람이 불어올 때는 엉덩이 뒷 부분에서 공기의 속도가 느려지고, 선수의 오른팔, 오른 다리 쪽으로 바람이 불 경우에는 종아리 뒷편에서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홍성찬 교수는 "바람은 몸 전체로 불지만 공기의 흐름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부분적으로 나눠 설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활강시 위로 떠오르는 힘인 '양력' 측정에도 성공했다. 초속 40m로 활강할 때 팔과 허벅지 부근에서 위로 떠오르는 힘이 측정됐다. 위로 떠오르는 양력은 공기 저항과 마찬가지로 활강 속도를 떨어트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스키 선수가 초속 40m의 속도로 움직일 때 공기 저항은 185N(뉴튼)으로 나타났다. 이는 약 18.5kg의 힘이 뒤에서 잡아 당기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속도가 올라갈수록 저항력은 커지게 된다. 1000분의 1초 시간 싸움을 하는 스키 선수들의 경우 이 공기저항력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따라 메달 색이 바뀔 수 있다.
연구진은 공기 저항으로 인해 마찰력이 크게 발생하는 부위가 종아리(약 50%), 양팔(약 15%), 머리(약 12%), 허벅지(약 9%) 순이라고 덧붙였다. 홍성찬 교수는 "양발(종아리)의 저항값이 전체 저항의 약 절반에 해당되는 만큼 활강시 양발의 위치의 변화(발의 간격이나 각도 등의 변화)을 통해 저항값을 유리하게 만들수 있다"며 "혹은 공기저항이 적은 원단이나 공기 소용돌이를 작게 만드는 방법을 통해 속도를 보다 빠르게 만들
그는 "현재 모 스포츠브랜드와 공기 저항을 줄일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번 연구 결과는 머리의 각도, 손의 위치 등의 변화를 통한 다양한 코칭방법 및 고글, 헬멧, 부츠 등 스키용품개발의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원호섭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