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셰일오일업계와 미국을 제외한 산유국 사이의 눈치게임에 국제유가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셰일오일업체들을 고사시키기 위한 원유 증산 경쟁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합의로 일단락됐지만 유가하락에 대한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는 모습이다.
OPEC 감산합의로 상승하던 국제유가가 약세로 돌아서면 회복조짐을 보이는 조선업계는 또 다시 수렁에 빠질 우려가 있다. 석유를 원재료로 사용하는 정유·화학업계도 유가의 불투명한 방향성에 고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정유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지난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미국 셰일오일 생산량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 지난 18일 하루에만 2.7% 급락해 배럴당 51.37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OPEC와 이들의 감산합의에 동참하기로 한 산유국들이 합의를 잘 이행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 20일에는 다시 2% 상승해 52.48달러로 지난주 거래를 마쳤다.
시장은 지난 2014~2016년 벌어진 미국 셰일오일업계와 중동 산유국 사이의 싸움이 다시 벌어지는 것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지난해 11월 OPEC이 일일 원유 생산량을 120만 배럴, 12월 러시아·멕시코 등 비OPEC 산유국이 55만8000배럴 각각 감축하기로 합의하자 국제유가는 배럴당 50달러선을 회복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원유생산이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면서 감산합의가 깨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국제유가 시장을 출렁이게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화석 연료 사용을 늘려 미국을 부양하겠다는 정책 방향 때문이다.
심혜진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원유 생산 증가는 올해 하반기에 가시화될 것"이라며 "올해 국제유가 상단은 배럴당 60달러 수준"이라고 예상했다.
배럴당 60달러 선 이상으로 오르지 못할 것이란 전망의 근거는 미국 셰일오일업계의 증산이다. 중동 산유국들의 증산공세에 시달리던 지난 2년 동안 셰일오일업체들은 채굴단가를 배럴당 70달러에서 50달러 수준으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의 유가 수준에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원유 증산 분위기와 달리 감산에 합의한 산유국들은 아직까지 약속을 지키는 분위기다. 칼리드 팔리흐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산업광물부 장관은 이날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OPEC 감산 모니터링 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감산합의에 참여한 국가들이 현재 일일 원유생산량을 150만배럴 줄였다고 밝혔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11월의 감산 합의는 미국 셰일오일업계가 OPEC을 이긴 것으로 봐야 한다"며 "증산 경쟁은 양쪽 모두에게 손해라는 것을 깨달아 국제유가를 현재 수준에서 유지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감산합의가 깨질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석유개발업계 관계자는 "역사적으로 원유 감산합의는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며 "한 쪽이 감산을 하면 다른 한 쪽이 증산해 시장을 빼앗는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감산합의가 깨지면 지난 지난해 초 배럴당 20달러대까지 떨어졌던 증산경쟁이 다시 재현될 수 있다.
감산합의가 무산돼 국제유가가 하락 추세에 접어들면 조선업계가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최근 회복조짐을 보이고 있는 발주 시장에 찬물을 끼얹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은 OPEC의 감산합의로 유가가 상승하자 지난해 발주가 미뤄졌던 1조5000억원 규모의 대형 해양플랜트 계약을 지난 5일 확정지었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약세를 보이기 시작하면 발주 가뭄이 다시 시작될 뿐 아니라 이미 수주한 해양플랜트에 대해 발주처가 인도를 꺼리면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완성한 드릴십 2척을 발주사인 앙골라 국영석유회사 소난골이 인도받지 않아 인도대금 1조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유·화학업계는 유가의 방향성이 결정돼 불확실성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화학업계는 유가가 하락하면 원가 부담이 줄어 마진이 확대되지만 장기적으로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급변동하지 않고 완만하게 상승하는 게 정유업체 입장에서는 가장 편하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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