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의료 활동을 하는 어떤 의사를 만났적이 있어요. 그가 제게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진단을 해야하는데 이때 가장 필요한 게 원심분리기라는 거에요. 그런데 전기도 없고 고장이 나면 수리가 어려워 있어도 난감하다는 겁니다."
얼마 전 미국 CNN에서 200원으로 에이즈나 말라리아 같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원심분리기를 개발한 미국 스탠퍼트대학교의 생명공학과 조교수로 있는 마누 파카샤(Manu Prakash)에 대해 방영했다.
CNN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우연히 만난 의사의 얘기를 듣고 전기가 없는 곳에서 쓸 수 있는 원심분리기를 만들 수는 없을까 고민했던 파카샤 교수는 그 실마리를 고대에서부터 써왔던 장난감에서 찾았다. 그가 이토록 원심분리기 제작에 매달린 이유는 병원이나 임상 연구소에서 흔히 보는 원심분리기의 대당 가격이 1000달러에서 5000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해 120만~600만원으로 고가이기 때문이다.
인도 태생인 그가 느끼기에 인도의 빈민촌이나 아프리카 같은 제3세계에서 이처럼 비싼 원심분리기는 그저 '그림의 떡'이었다. 특히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원심분리기가 있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파카샤는 연구실로 돌아와 대학원생들과 함께 요요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는 "주방에서 쓰는 달걀 거품기나 샐러드 혼합기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혈액을 분리해 낼 수 없었지만, 요요는 매우 빨라 가능할 듯 보였다"면서 "하지만 요요는 이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만 해 실용적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후 연구팀은 빠른 회전을 할 수 있는 거면 닥치는 대로 실험했다. 그러다가 장난감에서 답을 찾게 된다. 그것은 실을 단추 구멍에 꿰어 통과시킨 뒤 서로 묶고, 실의 양쪽을 붙잡고 한쪽 방향으로 돌려 실을 꼬이게 한다. 그리고 양쪽으로 잡아당기면 꼬인 실이 풀렸다가 반대방향으로 다시 감기고 또 당기면 풀렸다가 반대방향으로 다시 감기면서 가운데 단추가 신나게 돌아가는 장난감이다.
이 장난감의 원리를 이용하면 사람 손으로 돌리는 그 어떤 장비보다 빠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원리를 터득한 연구팀은 이 장난감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최대한 빨리 돌리기 위한 연구를 시작한다. 3명의 학부생까지 충원돼 6개월에 걸쳐 연구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1분당 12만5000번까지 회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게 된다.
연구팀은 여러 차례 실패 끝에 종이로 된 회전 분리기를 만드는데 성공한다. 두 장의 고분자 종이 디스크와 가는 낚싯줄을 꼬아서 만든 줄, PVC 손잡이로 일단 분리기를 만들었다. 종이 디스크 위에 빨대는 본드로 붙였다. 바로 이 빨대가 검사할 혈액이 담길 곳이다. 이것을 만드는데 들어간 비용은 20센트, 우리 돈으로 고작 230원이다.
연구팀은 실제 이 장난감 같은 장비가 제대로 기능을 하는지 공개 실험했다. 그 결과 혈액 샘플을 담아 돌린 지 1분 30초 만에 혈장을 분리했고, 15분을 돌린 끝에 말라리아 기생충도 분리해냈다. 이 장비만 있으면 전기가 없는 아프리카 오지에서도 사람의 힘으로 혈액이나 대소변 샘플을 담아 필요한 성분들을 분리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파카샤 연구팀은 이 프로토타입을 토대로 실제 장비를 만들었다. 3D 프린터를 이용해 플라스틱과 폴리머 등으로 비슷한 장비를 만들
파카샤 교수는 "과학이나 의학 장비가 특정 장소, 특정 계층에만 쓰이는 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곳, 그 누구에게나 쓰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애민이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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