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사들이 신약이나 복제약(제네릭)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원료의약품의 수출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올해 국내 제약업계 의약품 수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30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원료 물질의 수출 호조가 이 같은 성장세를 견인하고 있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동아쏘시오홀딩스의 원료의약품 전문 계열사 '에스티팜' 매출은 지난해 1분기보다 54.8% 증가한 478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178억원으로 같은 기간 106.6% 뛰었다. 불과 1년새 수익성이 2배 이상 개선된 것이다.
호실적 배경에는 이번 분기 기준 전체 매출액의 87%에 달하는 에스티팜의 수출액이 자리잡고 있다. 에스티팜은 다국적제약사 길리어드사가 생산하는 C형간염 치료제 원료를 납품하는 회사다. 비록 길리어드사 C형간염 치료제의 매출은 하락세지만 에스티팜이 공급하는 원료인 '앱클루사' 등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이어지면서 원료의약품 수출 규모는 견조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에스티팜은 또 최근 올리고핵산치료제에 들어가는 고마진의 원료 공급계약을 다국적 제약사들과 잇따라 맺고 있다. 지난 12일에도 영국 제약사와 113만달러(약12억6955만원) 규모의 올리고 원료 납품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국내 제약사 매출 1위인 유한양행도 원료의약품 수출이 매출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유한양행 역시 자회사 유한화학으로부터 납품받은 C형간염치료제, 에이즈치료제, 항생제 등의 원료를 길리어드사나 로슈, 화이자 등 다국적 제약사에 공급한다. 실제로 올 1분기 유한양행의 '어닝 서프라이즈'도 상당 부분이 원료 수출 강세에서 비롯됐다. 지난 1분기 유한양행 매출액은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27.4% 증가한 3494억원을 기록해 시장 기대치를 뛰어 넘었다. 실적을 뜯어보면 전 사업부가 고르게 성장했지만 특히 원료의약품 수출액이 742억원에 달해 전년 동기보다 168.3%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21.2%로 지난해 19%보다 늘어났다.
다른 대기업 계열사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종근당홀딩스의 두 원료의약품 자회사인 종근당바이오와 경보제약 역시 올해 1분기 각각 300억원, 453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꾸준한 흐름을 이어갔다. 전체 매출도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4.2%, 1.1% 소폭 성장했다. 종근당의 발효 원료의약품과 합성 원료의약품 제조 전문업체인 두 회사 모두 매출액 가운데 직·간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83%과 47%에 달해 내수보다는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이처럼 원료의약품이 수출 주력품목으로 자리매김한 까닭은 완제의약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해외 시장 침투가 쉽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전 세계 제약사들의 블록버스터 품목들이 이미 시장을 선점해 각축전을 벌이는 신약이나 제네릭보다는 한국 제품들이 설 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국내 원료의약품은 원가 경쟁력에 있어 중국과 인도에 다소 뒤쳐지지만 선진국 수준의 생산·품질관리 역량, 고난이도 합성 및 양산 기술 덕분에 고부가가치 제품군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 받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원료 물질은 신약 임상이 진행되고 블록버스터 품목들 판매가 활발해질수록 수요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지속 성장이 가능한 품목으로 꼽힌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형 신약이나 제네릭을 개발하는 데 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감안하면 국내 제약사들에게 매력적인 수출 활로인 셈이다. 이에 따라 더 많은 생산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대기업 계열사들의 공장 증설도 잇따르고 있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상반기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경기 화성에 제2공장을 완공했다. 에스티팜은 반월 2공장에 330억원을 투자해 약 2000억원 규모의 생산능력을 가진 올리고핵산 원료 공장을 신설하고 있으며, SK그룹 자회사 SK바이오텍도 2020년까지 생산규모를 5배 키운다는 목표로 원료의약품 전문 생산공장을 짓는 중이다.
구자용 동부증권 애널리스트는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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