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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주혜(시각장애인 1급)씨가 ETRI 개발 전자책 리더 기술을 활용해 책의 내용을 듣고 있다. [자료제공 = ETRI] |
스마트폰 앱이 열리자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손가락으로 도서 목록 화면을 좌우로 쓸어넘길 때마다 해당 메뉴가 음성으로 들린다. 마음에 드는 책을 두 번 두드리면 책읽기 화면이 열린다. 두 손가락을 아래로 끌자 목소리가 본문을 읽어주기 시작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 중인 시각장애인 전용 어플리케이션 '씨(SEA)' 리더에 대한 설명이다. ETRI는 시각장애인이 일반 전자책을 자유자재로 들을 수 있도록 장애인들의 편의에 맞게 책을 자동 변환해주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19일 밝혔다. 책을 뒤지고, 선택하고, 읽는 전 과정을 음성으로 처리해준다. 올해부터 시범 시행될 것으로 보이는 이 기술은 화면상에 보이는 모든 것을 소리로 바꿔준다.
문자는 물론이고 수식이나 표, 그림, 그래프도 읽어준다. 약속된 독음 규칙에 따라 차례로 장면을 묘사해주는 식이다. 가령 오케스트라 장면이 나오면 "이미지, 중앙에 오케스트라 단원이 위치한다, 중앙 좌측에 바이올린 연주자가 있고, 중앙 우측에 첼로 연주자가 있다, 뒤쪽에 합창단이 있고, 앞쪽에 성악가가 앉아있다"고 말한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머릿속에 그림을 떠올리게 해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술개발에 관한 표가 나오면 "기술개발에 관한 표다" "1에서 5까지 하나씩 증가하고 있다" "2000원에서 5000원으로 1000원씩 증가하고 있다"고 차근차근 흐름을 알려준다.
그 동안 시각장애인들은 점자책이나 음성도서를 통해 책과 만났다. 애초에 장애인용으로 개발된 책만 이용해온 것이다. 최근 신간의 90% 이상이 전자책으로 동시 발간되는데도 불구하고, 이들 책을 이용할 수 있는 길은 마땅치 않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자책(디지털문서) 규격을 따른 '데이지(DAISY)’ 도서가 보급되긴 했지만, 선택의 폭이 좁았다. 일반 비장애인용 전자책을 일일이 규격에 맞게 재가공해야 하다보니 신간의 4~10%에만 적용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에 ETRI는 시각장애인이 일반 전자책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네 가지 원천기술을 개발했다. 이미 제작된 도서를 자동 음성 '변환'하는 기술이 대표적이다. 애초에 제작자가 처음 전자책을 만드는 단계부터 표준 규약에 따르도록 하는 '저작' 툴도 제공한다. 또한 전자책을 필요에 따라 소제목, 문장, 단어, 글장 단위로 끊어 읽을 수도, 연속으로 읽을 수도 있게 하는 자체 '리더' 기술도 있다. 원하는 구간만큼 속독 또는 정독도 가능하다. 이용자가 설정한 책갈피, 메모, 이미지, 본문, 목차 항목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마지막은 전자책을 선택해 다운받을 수 있는 '서비스 플랫폼'이다.
다만 아직은 기술 개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아직 그래픽 전달력은 중학교 수준이라 더 복잡한 수식이나 표, 그래프를 파악하려면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서적까지는 어렵다는 얘기다. 또한 시각장애인들이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는 기간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길연희 ETRI 책임연구원은 "그 동안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전자책 도서 규격은 있었지만 일반 시중에 있는 전자책을 들을 수 있는 통로는 제한돼 있었다"며 "스마트폰 스크린 리더 기능과 연동하거나 자체 리더 기술을 활용해 장애인들의 접근 범위를 넓혔다는
해당 기술은 일반 전자책의 국제표준 기술인 이펍(EPUB)을 기반으로 하며, 문화체육관광부 '장애인 접근성 전자책 서비스 플랫폼 기술 개발' 과제의 일환으로 개발됐다. 연구진은 관련 기술의 국제특허를 출원하고 기술이전, 해외 진출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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