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가 엄청난 흥행을 하는 시기에, 좀비물이 관객의 마음을 훔칠지 우려하는 시각이 컸다. 하지만 지난 14일 오픈된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일단 화이트 데이를 노리고 개봉 시기를 고려했던 관계자들의 판단은 정확했다.
영화관 데이트를 즐긴 연인과 비록 연인은 아니더라도 친구들과 극장을 찾은 관객 가운데, 꽤 많은 수가 ‘웜 바디스’를 관람했다. 관객들은 무기력하게 살던 좀비 R(니콜라스 홀트)이 인간 소녀 줄리(테레사 팔머)와 사랑에 빠지며 변해가는 과정에 몰입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 결과 개봉 첫날에만 관객 8만432명을 기록했다. 지난 주말까지 누적관객은 50만 명을 넘었다.
좀비영화는 한국시장에서 마니아층이 두터운 장르다. 잔인하고 기괴하며 혐오스러운 장면들은 특히 여성 관객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했다. 거부감이 가장 컸던 장르라고도 할 수 있다.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상대적으로 좀비 장르를 좋아하는데 데이트 주도권을 쥔 건 여성들이다. 그 때문에 남자들이 미국드라마 ‘워킹 데드’를 TV를 통해 즐기는 것과는 다르게, 직접 영화관을 가야 하는 ‘웜 바디스’의 흥행은 뜻밖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관객들은 다른 좀비 영화들과 달리 잔잔한 재미와 유머, 사랑 이야기에 푹 빠진 것 같다. 죽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을 잡아먹기 위한 존재로 여겨진 좀비가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도 할 수 있고,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신선한 설정이 흥미를 끈 것으로 보인다.
니콜라스 홀트는 창백한 얼굴에 사람을 물어뜯고 허우적대는 좀비로 등장하지만 점차 꽃미남 이미지로 변해 여성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하다. 또한 여장부 같은 모습으로 나오지만 지켜주고 싶은 테레사 팔머와의 로맨스가 훈훈하고 달달한 것도 관객몰이의 이유다.
영화 ‘50/50’을 통해 희소암 판정을 받은 남자의 이야기를 비극이 아닌 희망적이고 감동적으로 푼 조나단 레빈 감독이 또 한 번의 의외성을 드러낸다. 레빈 감독의 재치와 유머,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다시 또 읽을 수 있다.
앞서 ‘웜 바디스’는 흥행몰이를 기대하며 13일 약 3000석 규모의 전관 시사회를 열었다. 화이트데이를 앞두고 진행된 이벤트라 성황이었고, 고스란히 성적에 집계됐다. 반짝 이벤트라는 분위기가 짙었지만, 관객들은 만족했고 입소문을 내고 있다.
특히 한국영화의 흥행 속에 외화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시고 있던 터라 ‘웜 바디스’의 흥행이 더 눈에 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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