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명준 기자] 선입견은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볼 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얻는 정보 역시 그렇다. 신중한 것은 좋지만, 결국 ‘부딪쳐 경험해라’가 정답이 될 때가 많다. 배우 조안이 그렇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영화 ‘소리굽쇠’에 조안이 출연한다는 소식이 들었을 때 반응은 “내가 아는 조안?”이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차분한 역할을 했을지언정, 깊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비롯해, 암울했던 과거사를 풀어내는 영화에 등장한다는 것이 기존의 이미지와 맞지 않았다. 연기만 한 것이 아니다. 영화에 들어가는 노래도 하고, 손글씨도 썼다.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 마주앉아 시작한 대화의 시작도 ‘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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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현지 기자 |
“출연을 결심할 때 ‘왜’는 없었다. 대본을 받자마자 의무감, 책임감이 들었다고나 할까. 나한테 대본을 주셨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문제고, 나는 대한민국의 여배우다. 솔직히 작품이 왔을 때 겁은 났다. 돈이 꽤 들어간 영화들도 막바지에 가면 열악해지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엄청난 저예산이고, 심지어 중국까지 가서 찍는다고 하더라. 당연히 한국에서 촬영하는 것보다 더욱 열악할 수밖에 없고, 처음에는 노숙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걱정까지 했다. 그렇게 때문에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지 않을까’라고 걱정했다. 게다가 ‘정글의 법칙’ 다녀온 직후였기 때문에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그런 면에서는 고민을 했다. 그러나 작품의 취지가 정말 좋았다. 모두 재능 기부로 꾸려졌고, 수익금 또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기부를 한다. 나는 대한민국 여배우로서 많은 혜택을 받았다. 그걸 돌려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를 피하면 죄책감이 들 것 같았다. 부담감도 컸지만, 나를 움직인 것은 무엇보다 의무감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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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현지 기자 |
배우에게 이미지 변화는 어느 특별한 시점을 요구한다. 안 좋은 사건사고를 겪었거나, 일정한 캐릭터에서 못 벗어나 연기력 비판을 받을 때가 대다수다. 물론 ‘도전’이라는 단어 안에서 이미지 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메시지가 강한 영화는 적절한 대상이다. 그런데 조안에게는 그럴 시기가 아니었다. ‘소리굽쇠’ 선택에 대한 대답이 ‘의무감’이었다면, ‘소리굽쇠’와 같은 메시지 강한 영화를 선택한 것에 대한 대답도 궁금했다.
“저한테 캐릭터 변화가 필요한 시점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일드라마에서 맡은 캐릭터가 첫 악역이라, 거기서 이미지 변화를 가졌다. 정말 소리 지르느라 힘들었다.(웃음) 아마 예술하는 사람들은 다 느끼겠지만, 이게 꼭 나에게 지금 당장 물질적 이득이 안되더라도 내 열정을 쏟아 부어야 할 것 같은 작품이 느껴진다. ‘소리굽쇠’가 바로 그런 거였다. 안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앞서 말했듯이 의무감과 죄책감이었다. ‘좋은 일이야’라는 판단이 들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안은 ‘소리굽쇠’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귀임 할머니(이옥희 분)의 손녀인 향옥 역을 맡았다. 중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오지면, 두 나라 모두에게서 차별받는 현실을 겪게 된다. 같은 아픔을 다룬 다른 영화나 다큐에 비해서는 확실히 무게감이 덜하지만,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연기를 할 때 조심스러운 면도 적잖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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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현지 기자 |
“대본을 받았을 때, 할머님들의 아픔을 긁는 작품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이 일은 기억돼야 하고, 할머님들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 하나로 할머님들의 상처를 다시 들춰내서 아프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할머님들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상처를 긁어내고 한 번 더 상처를 입히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할머님들은 그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드시겠지만, 이 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건 중요하다. 대본을 봤을 때 느꼈던 건, 할머님들의 고통을 최소한으로 줄였다는 느낌이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소리굽쇠는 ‘U’자 형의 철이다. 고유진동수가 같은 두 개의 소리굽쇠 중 하나의 소리굽쇠를 울리면 떨어져 있는 소리굽쇠는 때리지 않아도 같이 진동한다. 바로 공명 때문이다. ‘소리굽쇠’는 과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모습과 현재 그들의 후손의 삶을 맞추려 한다. 그런데 그 안에서 의문이 존재한다. 귀임 할머니와 향옥의 공명 지점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귀임 할머니의 아픔과 그 후손들의 아픔의 방향이 다르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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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현지 기자 |
“공명하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는 의아할 수 있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에도 ‘공명을 이루는 대상이 분명한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상처와 한국에서 향옥이 받은 상처와 같이 울린다는 것 보다는, 일제 강점기 시대 때 아픔을 겪었던 분들과 그 후손들이 현재 겪는 아픔으로 봐야할 것 같다. 포장마차 신에서 (향옥이
) 조선족으로서 아파하는 장면이 있다. 만약 할머니가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았다면, 나도 조선족으로서 설움을 당하지 않았을 수 있지 않을 것이란 한탄을 한다. 그 시대의 아픔의 울림이 현실에서도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실는지 모르겠다.”
유명준 기자 neocross@mkculture.com / 트위터 @mk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