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최근 MBC 수목드라마 ‘킬미, 힐미’와 SBS 수목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의 원작만화 ‘지킬박사는 하이드씨’의 이충호 작가 사이 소재의 유사성을 놓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이충호 작가가 이중인격(다중인격)을 가진 주인공의 로맨스를 그린 것은 자신이 원조이며, ‘킬미, 힐미’가 아이디어 도둑질을 했다고 맹비난하면서 불거진 것이다.
‘킬미, 힐미’는 과연 이충호 작가의 주장처럼 ‘지킬박사는 하이드’의 아이디어를 도용한 것일까. 아니면 ‘킬미, 힐미’의 주장처럼 표절의혹을 제시하면서 벌어지는 노이즈마케팅을 노린 원작자의 ‘노림수’인 것일까.
지난달 21일 이충호 작가는 ‘킬미, 힐미’ 기자간담회 당시 주연배우 지성의 발언이 담긴 기사를 링크한 뒤 “이런…당당한 걸 보니, 아직 모르는구나. 곧 알려줄게. 본인이 도둑질한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단 사실을”이라면서 ‘킬미힐미’가 자신의 작품을 도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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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호 작가의 트위터가 언론에 알려지자 ‘킬미, 힐미’의 제작사 펜엔터테인먼트는 “대응할 가치가 없다. ‘킬미, 힐미’의 진수완 작가가 다중인격을 지닌 재벌 3세의 로맨스를 집필한다고 발표한지 벌써 1년이 지났다. ‘하이드 지킬, 나’가 방송되고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특별판이 시작된 지금 와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저의를 모르겠다”고 대응했다.
이후 이충호 작가가 드라마와 자신의 웹툰을 홍보하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쏟아졌고 이에 이충호 작가는 트위터가 아닌 자신의 블로그에 “다중인격자를 다룬 이야기는 많을 수 있다. ‘킬미, 힐미’가 표절했다는 이야기에 화가 나기보다는 많은 사람들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킬미힐미’와 ‘지킬박사는 하이드씨’가 유사하다고 느낀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고 공식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이어 “만화단체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검토할 것이고, 많은 만화가들이 작품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라며 법적분쟁까지 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두 드라마 사이 논란의 요지는 ‘다중인격’이라는 소재를 사용한 것에 있어서, 이충호 작가의 주장대로 ‘아이디어 도용이 성립이 되는 가’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실제 법적인 절차를 밟을 경우 이충호 작가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저작권법은 이충호 작가가 주장하는 ‘아이디어’를 보호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저작권법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를 구체화 시켜 풀어나가는 표현형식이지, 그 아이디어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약 아이디어 도용이 인정되더라도 이충호 작가에게 이득이 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중인격과의 러브스토리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스의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에서 사용된 만큼 그 역사가 유구하다. 만약 이충호 작가의 주장대로 ‘킬미, 힐미’가 ‘지킬박사는 하이드씨’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고 인정된다면, 그 자신도 ‘지킬박사는 하이드씨’ 전 등장했던 다중인격의 로맨스 영화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Me, Myself & Irene, 2000)과 ‘두 얼굴의 여친’(2008)의 소재를 도용했다는 꼴이 되 버리고 만다. 특히 ‘지킬박사는 하이드씨’의 경우 제목자체를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에서 변주한 만큼 그 타격은 더욱 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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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제작사협회의 박상주 PD는 이충호 작가의 주장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만약 ‘킬미, 힐미’의 표절을 주장하려면 ‘지킬박사는 하이드씨’에 등장하는 특정 대사가 똑같다거나 아니면 캐릭터 성격이나 행동이 완전히 똑같다든가 겹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다중인격은 이전에도 많이 있었던 부분이었고, 그 하나만으로 창작의 부분을 훼손했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킬미, 힐미’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어 “다중인격장애를 겪는 남자의 인격과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 코미디는 내가 2011년에 그린 ‘지킬박사는 하이드씨’가 시작”이라는 이충호 작가의 주장에 “국내 드라마 시장의 특성상 장르적 유사함도 있을 수밖에 없다. 과거 우스갯소리로 tvN ‘미생’이 지상파 드라마에 갔을 경우 장그레와 안영이, 장백기의 삼각관계가 이뤄졌을 거라는 말이 떠돌았다. 즉 지상파 드라마는 모든 대중을 상대로 하는 만큼 로맨스는 기본적으로 들어간다. 이중인격의 로맨틱코미디가 카피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치면 모든 로맨틱코미디는 모두 표절”이라고 설명했다.
드라마제작협회 뿐 아니라 대부분의 드라마 업계 종사다들은 ‘킬미, 힐미’와 이충호 작가의 대결에서 ‘킬미, 힐미’ 손을 들어주고 있다. 표절이라고 하기에는 두 작품이 너무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어떤 드라마 관계자는 확인되지도 않은 섣부른 표절의혹이 도리어 순수 창작물이었던 드라마에 부정적인 표절이라는 낙인을 찍어 부정적인 여론을 심어준다며 속상해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 tvN 드라마 ‘아홉수 소년’의 경우 대학생 연합 동아리 창작 뮤지컬 ‘9번 출구’의 작가가 표절의혹을 제시하면서 순식간에 ‘표절드라마’라는 낙인이 찍혀버렸다”고 언급 했다.
실제로 ‘9번 출구’ 측은 ‘아홉수 소년’에 대해 캐릭터와 소재가 뮤지컬 유사하다면서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9번 출구’와 ‘아홉수 소년’ 사이 설전이 벌어졌고, 결국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9번 출구’는 원에 가처분신청을 요청을 하기에 이른다. 둘 사이 분쟁은 법원이 12월 ‘9번 출구’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마무리 됐다. 법은 ‘아홉수 소년’이 표절하지 않았음을 인정했지만, 이미 드리워진 부정적인 이미지의 타격을 회복하기에는 시간이 흘러버리고 만 것이다.
다시 ‘킬미, 힐미’와 이충호 작가 사이 갈등으로 돌아가서, 실제 소재의 유사성으로 법적시비 까지 가렸던 ‘아홉수 소년’이라는 선례가 있는 만큼 이충호 작가가 주장하는 바를 이루기에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충호 작가의 말처럼 ‘킬미, 힐미’가 자신의 작품을 도용했다는 주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중인격’이라는 소재 뿐 아니라 실질적인 전개의 유사성과 인물간의 갈등 구조의 도용 여부를 밝혀야만 한다는게 업계의 중론이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