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박정선 기자] 대기업의 수직계열화 문제를 비판하며 ‘을’의 입장에서 싸웠던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 순식간에 ‘갑’으로 둔갑했다. 영화 ‘조류인간’의 신연식 감독의 문제제기가 발단이 됐다.
지난 2일 신연식 감독은 보도자료를 통해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하 ‘개훔방’)의 최근 재개봉 여파가 독립영화들의 설 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자칫 어렵게 싸워 잘나가고 있는 영화에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노릇이고, 곧 개봉을 앞둔 자신의 영화를 홍보하기 위한 노이즈마케팅의 일환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신연식 감독은 총대를 멨다.
신 감독은 “독립영화전용관은 영화의 다양성에 가치에 두고 만든 극장이다. 상업영화인 ‘개훔방’이 15개 이상의 극장을 배정받는 것은 독립영화계에는 엄청난 폭력이다. 이는 고등학생이 대학생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억울해 하면서, 유치원 놀이터에 와서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라며 ‘개훔방’의 재개봉을 즉각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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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개훔방’이 개봉 초부터 대기업이 주도하는 스크린 독과점에 대항해 싸워온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개봉 두 달이 지난 시점에 재개봉을 추진하고, 그것도 독립영화 전용관을 15개 관이나 차지하고 있는 것은 말이 되는가. 제 영화를 살리자고 다른 독립영화를 죽이는 격”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개훔방’은 지난해 12월29일 개봉한 이후 전국 약 200여 개의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했지만, 개봉 2주차부터 교차상영에 들어가면서 대기업 멀티플렉스가 주도하는 스크린 독과점에 대해 비판했다. 대중 역시 이러한 상황에 비난과 아쉬움을 드러내며 강력하게 재개봉을 요구했고, 그 결과 지난달 12일 전국 40여개 극장에서 재개봉, 현재까지 전국 50여개 스크린에서 상영 중이다. 문제는 ‘개훔방’이 필름 포럼, 아트나인, 아트하우스 모모 등 독립영화 전용관에서 최근 개봉한 영화들보다 더 많은 스크린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개훔방’의 재개봉은 많은 사람들이 기다린 일이었고, 반길만한 성과다. 하지만 재개봉의 방식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훔방’으로 인해 다른 독립영화가 설자리를 잃게 된다면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개훔방’이 갑의 위치에 섰다고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사실 신 감독의 문제제기는 비단 ‘개훔방’의 재개봉으로 인한 독립영화의 피해만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신 감독의 이야기 속에 있는 본질을 살펴보면 충무로의 또 다른 문제점들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 한 가지 예로 든 것이 바로 크레딧 권이다.
‘개훔방’은 신 감독이 각본을 썼다. 작품에 대한 애정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자신의 작품을 극장에서 내려 달라고 말하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신 감독은 “시나리오는 내가 쓴 것에서 바뀐 것이 거의 없는데도 공동 각본가로 이름이 올라가고, 또 김성호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원작에 없던 여러 설정이 자신의 아이디어인 것처럼 이야기 해왔다”고 말했다.
이는 암묵적으로 창작자의 권리를 무시해온 충무로 관행에 대한 비판이다. 결국 신 감독이 내놓은 입장은 충무로의 또 다른 문제들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된 셈이다.
박정선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