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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레슬링의 계보를 이어온 이왕표 선수가 은퇴한다.
1세대 역도산과 2세대 김일에 이어 한국 프로레슬링의 외로운 길을 함께한 이왕표.
없이살던 그 시절, 충분한 오락거리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프로레슬링은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다.
김일의 박치기와 안토니오 이노키의 연수베기, 자이언트 바바의 정수리 촙, 압둘라 더 부처의 포크 찌르기, 천규덕의 당수, 백드롭의 장영철 등 이제는 기억에서도 멀어진 프로레슬링 선수들의 인기는 이제 추억속에 자리 잡았다.
텔레비전의 보급과 함께 인기를 이어간 한국 프로레슬링의 몰락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프로레슬링에 대한 보조금 지원이 대폭 줄어들었고 초대 한국 프로레슬링 챔피언 장영철 선수의 "프로레슬링은 쇼"라는 발언(나중에 잘 못 전해진 것으로 판명)이 시들어진 인기의 원인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지금까지도 많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 프로레슬링만 보더라도 정확한 답은 아닐 것이다.
산업화에 이은 급성장으로 오락거리가 풍족해지고 사람들의 눈높이가 높아졌으며 다양한 격투경기의 볼거리가 안방극장에 스며들면서 빠르게 변화하지 못한 한국 프로레슬링의 문제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환경에서 오로지 프로레슬링이라는 외길만을 걸어온 이왕표 선수에게 고개숙여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로레슬러 후반에 밥샵이라는 걸출한 이종격투기 선수와의 두차례에 걸친 경기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며 한국 프로레슬링의 자존심을 보여준 이왕표. 비록 아쉽게도 은퇴식 링 위에서 두 선수가 겨루는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시대를 풍미한 전설의 프로레슬러 이왕표의 퇴장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한국 프로레슬링의 역사와 함께한 장충체육관이 지난 1월 17일 재개관했고 바로 오늘 5월 25일, '이왕표 은퇴 기념 포에버 챔피언십(Forever Champion)-2015 WWA 국제프로레슬링대회'가 열렸다.
은퇴를 기념해 무료 입장으로 치뤄진 경기임에도 시대의 흐름에 밀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프로레슬링은 체육관의 빈자리만큼 공허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어떠하리 하얗게 불태웠으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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