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박정선 기자] 셰익스피어의 ‘햄릿’처럼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단솔 소재로 사용되는 인물은 단연 연산군이다. 하지만 영화 ‘간신’에서 김강우는 흔한 연산군을 색다르게 표현해냈다. 연산군의 트레이드마크인 광기를 대체 어떻게 해석한 것일까.
‘간신’은 연산군 11년 1만 미녀를 바쳐 왕을 쥐락펴락했던 희대의 간신들의 치열한 권력 다툼을 그린 작품이다. 광기 어린 연산군과 희대의 간신 임숭재(주지훈 분)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높은 수위의 장면들이 연달아 등장한다.
“많이 야하지 않나요? 여성들이 어떻게 볼지가 궁금해요. 역사에 있었던 인물이지만 불편할 수도 있는 장면들이 많아서 촬영 할 때도 그런 생각을 했고, 지금까지도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래도 기존 사극과는 다른 부분이 있어서 기대도 놓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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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현지 기자 |
배우로서 한 번쯤은 욕심을 내 볼만한 인물이 바로 연산군이다. 하나의 아픔으로 인해 폭군이 되고, 다분한 끼가 있었고, 욕망이 커지다 결국 파멸에 이르는 연산군은 배우로서 표현할 수 있는 인물들 중 가장 다채로운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김강우 역시 그런 연산군의 매력에 끌려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드라마 ‘골든크로스’를 촬영하던 중이었는데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일단 저에게 가장 먼저 시나리오를 줬다는 것에 가산점을 줬죠.(웃음) 워낙 유능한 감독님이기도 했고, 좋아했던 감독님이에요. 시나리오도 바쁜 상황이었는데 ‘훅훅’ 읽히더라고요. 그만큼 흡입력이 있었어요. 막연히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상태에서 접했는데 운이 좋은 거죠. 한편으로는 겁도 났고요.”
실존인물을 연기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없을 순 없었다. 아무래도 그간 연산군을 다룬 드라마와 영화도 있었고, 인터넷에 이름 석 자만 쳐도 다양한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때문에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한다거나, 위화한다는 오해가 생길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간신’을 보고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했다고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이는 감독과 배우들의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한쪽으로 치우칠까봐 걱정이 됐어요. 그 인물을 연기했던 전작들이 있으니까 비교가 된다는 부담감도 있었고요. 그걸 다 버리고 나와 그 인물이 마주앉아서 대화를 나누듯이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고민을 하다 보니 끝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부담을 버리고 ‘그 시대에 살아 본 사람은 없다’는 생각으로 준비했어요. 내가 표현하는 게 정답이라는 무모한 자신감을 갖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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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간신’ 스틸 |
말은 그렇게 하지만 김강우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연산군을 파헤쳤다. 그러다 새로운 연산군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연산군으로부터 희생된 사람도 물론 불쌍하지만 연산군에게도 연민의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김강우는 ‘간신’의 연산군은 어머니 폐비윤씨의 죽음으로 폭군이 됐다는 기존의 해석을 약간 뒤집었다. 폭군이 된 출발점이 연산군의 정신적 결함이 아니냐는 것이다.
“촬영하기 전에 감독님이랑 두 달 정도 진하게 연애를 했어요. 하하. 문자도 주고받고, 사진, 그림, 대사 장면 등을 24시간 열어놓고 상상의 나래를 교환하는 거죠. 이번 작품이 유독 그랬어요. 연산 캐릭터를 구축해놓지 않으면 ‘간신’이 무너질 것 같았거든요. 감독님도 신경을 많이 써주셨고, 저도 욕심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는 일사천리로 찍었죠.”
“평소 감독님이 디렉팅을 세세하게 해주시기로 유명한데, 저는 약간 달랐어요. 표현이 중요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믿고 맡겨주신 거죠. 안 되는 건 편집하는 방향으로 가겠다고 하셨어요. 제재하고 선을 그어놓으면 저도 편하지 못한 상태가 되니까요. 그래도 이번만큼 역사책을 많이 읽은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학생 때 이렇게 했으면…(웃음). 작은 것 하나라도 찾으려고 숨은그림찾기 하듯 연구했어요.”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감정’이었다. 많이 고민하고 연구한 만큼 연산군이라는 캐릭터에 몰입했고, 톤이나 감정을 유지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이 예삿일이 됐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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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현지 기자 |
노력의 결과일까. ‘간신’은 최근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현재까지 주부 관객층을 비롯한 중장년층 관객들 사이에서 꾸준한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특히 김강우는 ‘연기 인생에 최고의 작품’이라는 극찬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신들린 광기 연기는 물론이고 묘한 눈빛으로 연민의 감정까지 느끼게 했다.
“이 사람이 너무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아기 앞에 장난감을 던져줬을 때의 느낌 있죠? 그런 즐거움과 희열 같은 거요. 그래서 아드레날린을 표현하려고 했죠. 여자를 탐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다른 아름다움을 찾아가고, 또 변태적인 감각으로 춤이나 그림으로 완성시키는 거죠. 연민을 넣고 싶었던 장면도 있었어요. 태생적으로 결핍이 많은 사람이라는 설정을 보여주기 위해 얼굴에 홍점을 넣은 거예요. 역사적으로도 연산군이 폐위될 걸 알고도 술을 마시면서 울었어요. 알면서도 브레이크를 못 거는 게 불쌍하잖아요.”
대중들은 그에게 극찬을 보내지만 정작 본인은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이 배우, 연기에 대한 욕심이 정말 상상초월이다.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막상 저에게 오니까 너무 빨리 온 게 아니었나 싶었어요. 조금 더 원숙해졌을 때 지금의 내 연기를 보면 ‘이게 아쉽네’라고 느끼잖아요. 그런 공허감이 있어요. 또 다시 연산군 역할이 들어오긴 힘들겠지만 혹시나 들어온다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연산군은 파고 또 파도 새로운 게 나올 것 같거든요. 단, 그때는 제목이 ‘간신’이 아닌 ‘연산군’이어야겠죠? 하하.”
김강우는 ‘간신’은 비롯해 영화 ‘결혼전야’ ‘찌라시: 위험한 소문’ ‘카트’는 물론, 드라마 ‘골든 크로스’ ‘실종느와르M’ 등 최근 몇 년 간 쉴 새 없이 작품을 이어오고 있다. 이젠 조금 쉬어도 되지 않을까?
“이번에는 좀 쉬려고요. 연산군을 연기하고 나서 바로 드라마가 있는데 주변에서 걱정을 했다. 연산을 하고 나서 ‘괜찮겠니’라는 이야기를 많이 바로 ‘실종느와르M’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다 걱정을 하더라고요. 조금 쉰다고 연산군에서 벗어나진 못했을 거예요. 잔재가 오래 남으니까 오히려 작품을 하면서 잊으려고 한 거죠. 그런데 거의 끝나갈 무렵이 되니까 ‘타격이 조금 잇었구나’ 싶더라고요. 아닌 척 하려고 했는데 확실히 뭉쳐있었던 거죠. 사실 누구보다 쉬라고 한 건 와이프였어요. 그런데 재미있어서 한 거죠. 요즘 진짜 연기가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연달아 작품을 했던 건데, 이제 조금은 쉬어도 될 것 같아요.”
박정선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