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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석은 TV, 영화, 뮤지컬 등 장르 불문 소위 ‘잘 나가는’ 배우지만 요즘 깊은 고민에 빠졌다. 배우로서의 필모그래피가 차곡차곡 쌓여갈수록 점점 커져가는 내면의 충돌이다.
뮤지컬계에선 잔뼈 굵은 스타 플레이어였지만 대중에겐 낯선 얼굴이었던 게 불과 3년 전 얘기다.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의 ‘납뜩이’로 발견된 그의 가능성은 드라마 ‘더킹 투하츠’를 통해 보다 많은 대중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고, 이후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을 비롯해 영화 ‘관상’(이상 2013), ‘역린’,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이상 2014) 그리고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2015)까지 달려오며 배우로선 그야말로 ‘지붕킥’에 준하는 고공행진을 이어왔다.
지난 여름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군 케이블채널 tvN ‘오 나의 귀신님’에서 매력만점 강선우 셰프로 분해 여심(女心)에 또 한 번 강한 어택을 준 그는, 내달 초 개봉을 앞둔 영화 ‘특종:량첸살인기’에서는 또 다른 얼굴로 돌아온다. 크랭크인을 앞둔 영화 ‘형’에서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배우이기에 가능한, 그야말로 팔색조 변주다.
“제가 꿈꾸는 건 연극이든 영화든 뮤지컬이든 언제든 어디서든 열심히 잘 할 수 있는 배우, 장르를 넘나들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거예요. 뮤지컬배우, 영화배우, 연극배우, 탤런트 이렇게 나누는 건 싫어요. 배우 조정석으로서 이곳저곳에서 좋은 작품으로 찾아뵙고 싶습니다.”
‘오 나의 귀신님’을 마치고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 만난 조정석은 그렇게, 배우로서의 소박하면서도 원대한 포부를 드러냈다. 뮤지컬과 영화 일정으로 인해 다소 길어진 TV 공백에도 잊지 않고 큰 성원을 보내준 시청자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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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컷 사인이 떨어지고 카메라가 꺼지면 하트가 샘솟던 강선우의 눈빛은 조정석의 눈으로 곧바로 돌아왔다는 박보영의 폭로가 있었듯, 그는 확실히 ‘연기자’였다. 작품에서 조정석이 보여주는 러브라인을 지지하는 시청자들에겐, 환상을 깨뜨리는 일종의 배신감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이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그로선 당연한 선택이고, 지론이기도 하다.
“연기할 때도 감성이 이성을 지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면 남들이 공감하지 못한 채 나만 자위하는 장면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서죠. 그래서 컷 사인이 떨어지고 나면 감독님께 어떠셨냐고 곧바로 물어보곤 했는데, 보영이가 섭섭했나보네요 하하.”
조정석은 또 “공연의 경우, 끝나면 여운이 많이 남는데 캐릭터를 벗어나지 못하면 인간 조정석이 없어진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며 “극중 캐릭터를 연기한 뒤 인간 조정석으로 돌아올 때의 경계선에선 애써 그러려고 노력하는 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뜨거웠던 ‘오 나의 귀신님’의 여운은 여전하지만, 선선한 가을 바람과 함께 이제 옷을 갈아입을 차례다. 실제 연인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막강한 케미를 보여준 박보영과는 공교롭게도 스크린에서 선의의 경쟁을 벌이게 됐으니, 이 또한 배우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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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30대 후반의 나이에 접어든 조정석은 “아직 부모 역할은 안 해봤지만, 아빠 역할이 들어온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요즘은 앞으로 배우로서의 제 미래가 궁금하고 재미있을 것 같고 어떤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만나게 될까가 흥미로운데, 인간 조정석으로서는 왠지 뒤처지는 것 같기도 해요. 친구들 중 결혼한 사람이 많거든요.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아기아빠가 되는 모습을 보면 왠지 저만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
최근에는 ‘불알친구’ 둘이 가족여행을 다녀와 보여준 사진을 본 하소연도 했다. “그런 느낌 있죠, 나중에 제가 결혼해서 아기를 낳으면 그 아이가 자라서 (친구 아이들에게) 오빠, 형, 언니라고 할텐데, 나이차가 커지는 그게 싫은거죠. 그래서 현재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결혼을 너무 늦게 하고 싶진 않아요.”
배우로서의 그는 분명히 유니크하지만, 스스로 인간 조정석은 평범하다 강조했다.
“저는 사실, 되게 평범한 사람이에요. 평범한 걸 좋아해요. 그래서 부딪치는 부분도 있죠. 예전 인터뷰 땐 ‘죽을 때까지 철이 들고 싶지 않다’고 했었는데 점점 철이 드는 것 같아서, 내 안의 충돌이 있습니다. 20대 땐 그랬던 것 같아요. 연기에 미쳐버리겠다, 내 연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짜 광대(연기자)의 끝을 한 번 파헤쳐보겠다 이런 생각을 했을 정도로 욕심과 열정이 어마어마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제 인생, 제 바운더리도 커지다 보니 그런 욕심에 있어서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고 너그러워져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물론 배우로서 (대중에) 기대를 주고 믿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결코 변함 없지만, 욕심을 내려놓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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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정석으로만 계속 가면 인간 조정석는,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주위 사람들을 서운하게 할 수도 있을테니까요. 너무 바빠서 가족들을 못 만나고 가족들이 날 보고 싶어 하는... 그렇게 멀어지는 건 싫어요. 그런 개인적인 삶도 가져가되, 배우 조정석도 앞으로 나아가는 거죠. 그 과정에서 분명 만나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배우로서 하는 인터뷰로서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는 발언이지만, 30대 후반을 지나고 있는 한 남자의 솔직한 내면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오히려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무엇보다 그는 이미, 대중에 믿음을 심어준 배우이기 때문이다.
psyon@mk.co.kr/사진 문화창고[ⓒ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