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다원 기자] “사랑? 웃기는 소리하지 마.”
KBS2 ‘가을동화’ 원빈이 부활한 건 아니었다. 고풍스럽게 차려입은 도련님 안재현이 남장여자 이지아를 두고 삼각관계를 이룬 소작농 아들 지진희에 날린 ‘명대사’다. 대사만 들어도 유치한 느낌이 뚝뚝 묻어났다. 이처럼 SBS 특집극 ‘설련화’는 좋은 배우를 쓰고도 콘텐츠가 받쳐주지 않으면 얼마나 ‘오글거릴’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였다.
11일 오후 방송된 ‘설련화’는 전생과 현생의 사랑, 운명을 꿈으로 풀어낸 판타지 로맨스다. 지진희, 이지아, 안재현, 서지혜 등 연기력을 인정받거나 혹은 청춘스타 반열에 오른 이들이 포진해 방송 전부터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 사진=SBS 방송 캡처 |
내용은 간단했다. 게임업체 CEO 이수현(지진희 분)은 늘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꿈에 시달리다가 이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남장 여자 사원 한연희(이지아 분)를 만나 이게 꿈이 아닌 운명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꿈 속에서 늘 두 사람을 갈라놓았던 마문재(안재현 분)처럼 현실에서도 이수현에 일방적으로 집착하는 최유라(서지혜 분)의 방해로 이들의 사랑은 쉽사리 이뤄지지 못했다.
한연희 탓에 이수현과 결혼을 망친 취유라는 그길로 한연희를 찾아가 수면제를 탄 차를 먹이고 옥상에서 떨어뜨려 죽이려 했다. 때마침 전생의 신호를 받은 이수현은 한연희가 위험하다는 생각에 그에게 한달음에 달려갔고, 옥상에서 떨어지는 한연희를 온몸으로 구해내며 결국 사랑을 쟁취했다.
‘전생과 운명’이라는 소재에서 반전 따윈 없었던 평이한 스토리였다. 두 남녀주인공의 사랑을 확인하기까지 ‘비상식적인 악녀의 등장’ ‘남장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주인공의 고민’ ‘두 주인공이 탄 엘리베이터 고장나기’ 등 뻔한 설정들이 쉼 없이 이어졌다.
여기에 “누구냐 너” (남장 여자에게 사랑을 느낀 이수현이 한연희에게 의미 없이 정체를 묻는 상황) “사랑?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사랑 때문에 회사, 권력, 돈 다 버릴 수 있어?” 등 일차원적인 대사들이 덤으로 얹어졌다. 새벽녘 안방을 기습한 ‘오글거림’이 보는 이를 민망하게 했다. ‘미래창조과학부 지원’이란 자막에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지진희의 연기는 빛났다. 시청자를 얼어붙게 만드는 설정과 대사들의 향연 속에서도 꿋꿋이 감정을 이어나가며 ‘연기파 배우’라는 수식어를 입증했다. 꿈 속 운명적 사랑에 서서히 미쳐가는 캐릭터 설정에 현실성과 개연성이 없었지만, 연기력 하나로 커버했다.
이지아의 남장 연기도 눈에 띄었다. 오랜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온 셈이었지만, 그다지 튀지 않는 선에서 역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영상미와 BGM 사용도 콘텐츠 수준에 비해 훌륭했다. 전생과 현생이라는 몽환적 얘기를 아름답게 만드는 카메라 기법이 한편의 하이틴 로맨스 코믹스를 보는 듯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만 이처럼 좋은 배우들을 쓰면서도 왜 이런 콘텐츠를 생산할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점은 여전히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단 두 편이었지만, 짧고 밀도 높은 단막극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작품이었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