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대체 불가능한 박미선의 존재는 지금도 많은 개그우먼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한때 ‘줌마 파워’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박미선, 이경실, 조혜련 등 다양한 중견 여성 개그우먼들이 MC로 맹활약을 떨쳤던 시절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2000년대 중후반 때 사용됐던 말인데, 어느 새 ‘여성 예능인들의 무대가 사라졌다’는 말이 나오는 시대가 됐다.
그럼에도 박미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소소하게, 꾸준히 시청자들과 만나오고 있다. 메인 MC, 패널, 라디오 DJ 등 어떤 자리든 가리지 않고 시청자들을 만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하는 박미선의 모습은 많은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방송계 내에서도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 박미선. 그가 대체 불가능한 MC로 올라선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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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MBN스타 DB |
◇ 박미선, 지금의 장도연과 안영미의 ‘원조’
박미선은1967년 생으로 한양대 연극영화과 4학년 재학 시절 1988년 MBC ‘개그 콘테스트’에 금상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1988년 ‘청춘행진곡’에서 ‘별난여자’라는 코너에서 활약했는데, 이 코너를 통해 많은 시청자들이 박미선을 알게 된다.
당시 개그 콩트에서 여성들은 첨언을 하거나 등의 역할을 했을 뿐 웃음의 중심이 될 기회는 많지 않았는데 ‘별난여자’의 독신녀 박미선이 큰 눈을 굴리며 거침없는 독백을 하는 모습은 신선함을 자아냈다.
‘여자 스탠딩 개그의 원조’라는 수식어가 붙는 박미선은 한 인터뷰에서 “웃기려 하지 않고 말하듯 했는데 그게 더 웃겼던 모양”이라고 말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개그를 추구했다. 박미선은 ‘장신 연예인’으로 꼽히는데, 신체적 특성을 활용한 개그를 많이 했다. 대표 장신으로 꼽히는 장도연의 원조 격이다. 파격적인 콩트 대사들이 지금의 안영미, 박나래 등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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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MBC |
이처럼 개그 콩트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활약을 했던 박미선은 1989년 ‘철없는 아내’라는 코너에서 개그맨 이봉원을 만나 1993년 결혼에 골인한다. 이들은 코미디언 부부 2호에 등극하는데, 1호는 최양락-팽현숙 부부, 3호는 김학래-임미숙 부부다.
이후 그는 1992년 ‘빙글빙글 퀴즈쇼’를 비롯 ‘사랑의 스튜디오’ ‘기인열전’ 등의 프로그램에서 MC로 활약했다. 정확한 발음과 안정적인 진행 실력으로 많은 프로그램에서 MC로 기용하면서 박미선은 독설과 망가지는 연기를 자처했던 개그 무대와는 또 다른 차분한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 박미선이 다작할 수 있었던 이유
박미선은 한때 ‘수도꼭지 연예인’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TV를 틀면 나오는 ‘다작 MC’였다. 출산 후 잠시 방송 활동이 주춤했던 적도 있지만, 라디오 DJ로 꾸준히 시청자들과 만나고, SBS ‘세상에 이런일이’와 같은 역사가 긴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여하면서 성실한 방송인의 표본이 됐다.
하지만 메인MC 격이었던 박미선이 패널로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엔 고민이 많았을 것. 과거 한 인터뷰에서 박미선은 “‘세상에 이런일이’에서는 패널이었고, ‘해피투게더’에서는 ‘한 달만 일단 해보자’는 전제로 시작한 거였지만 최선을 다 했더니 결국 일이 따라왔다”고 말했다. 방송국을 ‘직장’으로 생각하고 자리를 가리기보다 ‘일 하는 게 중요하다’는 각오로 마음을 고쳐먹었더니 더욱 마음이 편안해지고 각종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더욱 많아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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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가 박미선에게는 ‘신의 한 수’였다. 한 달만 일하자던 ‘해피투게더’는 유재석, 박명수 등 개성 강한 MC들이 많고 게스트들도 한꺼번에 4명 이상 초대되는 대형 토크 프로그램. 여기에서 박미선은 게스트들에게 고르게 질문을 하거나 토크가 고조됐을 때 이를 중재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박미선은 프로그램 내에서 꼭 필요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역할을 제대로 해낸 덕분에 한 달 후 고정MC로 확정, ‘해피투게더’에서 제 2의 전성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를 시작으로 박미선은 ‘명랑히어로’ ‘세바퀴’ ‘우리결혼했어요’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약할 수 있게 됐다.
스스로를 향해 박미선은 “여기저기 갖다 쓰기 편하다”고 말하곤 한다. 무난하고 튀지 않는 진행 특성이 지금의 ‘다작’을 가능하게 했다고. 하지만 박미선의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늘 그는 다양한 게스트들에 고루 발언 기회를 주고 ‘독설’이 난무하는 분위기에서 수위를 조절하는 등의 ‘받쳐주는 MC’의 모습을 보인다. 주도적인 발언보다는 ‘받쳐주는’ 역할을 하면서 더블MC, 3MC의 중심을 맡아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역량이 뛰어난 인물.
그가 개그를 할 때에 ‘억지로 웃기려 하지 않았던’ 그 신조가 MC를 할 때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박미선은 자신을 앞으로 내세우기 위해 억지 개그나 지나친 독설을 하지 않고, 비록 잠시 뒤에 물러나 있더라도 그 시점에 딱 필요한 인물을 적재적소로 앞에 내세워 스포트라이트를 받게끔 해 프로그램 자체를 빛나게 만들었다. 이런 MC적 능력과 성품이 방송가의 사랑을 오래도록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 다양한 곳에서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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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선은 개그, MC뿐 아니라 배우로도 활약 중이다. 박미선의 필모그래피에서 상당수의 시트콤과 드라마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사람들에 깊은 인상을 준 작품은 ‘순풍산부인과’ ‘몽땅 내 사랑’ 같은 시트콤.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정통 연기를 배웠다는 점이 박미선의 다양한 경력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시트콤 뿐아니라 ‘돌아와요 순애씨’ ‘황금신부’ ‘최고의 사랑’ 등 정극 연기에도 도전한 박미선은 개그우먼이란 이미지에 오버하지 않는, 튀지 않는 연기를 덧붙여 안정적인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올해 방영 예정인 기대작 ‘마음의 소리’에도 캐스팅, 연기 경력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연기와 MC, 라디오 DJ와 더불어 봉사활동 등도 꾸준히 하고 있는 박미선은 급변하는 방송계에서 꾸준함, 성실함을 몸소 보여주는 아이콘이 됐다. 자신의 자리를 알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하는 겸허한 모습으로 지금까지도 여성 예능인으로서 사랑받고 있는 박미선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박미선은 1967년 3월10일 생으로, 1988년 MBC ‘개그 콘테스트’ 금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이후 ‘청춘행진곡’ ‘토요일 7시 웃으면 좋아요’ ‘코미디 전망대’ 등 다양한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또한 ‘명랑히어로’ ‘해피투게더3’ ‘대찬인생’ ‘우리결혼했어요’ 등을 진행했다. 라디오에서는 ‘특급작전’ ‘우리집 라디오’ ‘와와쇼’ 등을 진행하며 꾸준히 DJ활동을 벌이고 있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