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표독한 시어머니부터 푼수기 넘치는 엄마까지 폭넓은 연기를 펼쳤던 ‘연기의 달인’ 서이숙. 하지만 아직도 그는 목마르다. “명장면 하나만 남기면 그 배우는 성공한 것”이라며 다른 배우들에게는 ‘엄지척’이면서 스스로에게는 깍쟁이인 서이숙을 만났다.
숙은 최근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가화만사성’에서 유현기(이필모 분)의 어머니이자 봉해령(김소연 분)의 시어머니인 장경옥을 연기했다. 그의 서슬 퍼런, 하지만 아들을 끔찍이 사랑했던 시어머니의 연기에 많은 시청자들이 분노 혹은 안쓰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만난 서이숙은 ‘시어머니’가 아닌 유쾌한 ‘큰언니’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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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imbc |
주변 배우들의 평도 비슷하다. 김소연, 장인섭 등 ‘가화만사성’에 출연한 배우들이 인터뷰에서 반드시 언급하는 인물이 바로 서이숙. 모두가 한입으로 “성격 좋은 분”이라 극찬하는 그는 오히려 “덕분에”라며 칭찬을 돌린다. 서이숙은 ‘가화만사성’에서 장경옥 캐릭터가 잘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자신과 호흡을 맞췄던 김소연, 이필모가 정말 잘 해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소연이는 정말 착하고, (이)필모는 ‘여우처럼’ 잘 한다. 필모는 특히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알고 준비해오는 친구다. 난 연극에서는 ‘상황’만으로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인데, 드라마에서는 작가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토씨 하나 안 틀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가끔 단어에 ‘갇히게’ 되더라. 하지만 이필모는 정말 상황을 가지고 들어와서 딱 연기를 하는데 정말 잘한다. 가끔 그가 정말 잘해서 선배인 내가 민망해질 때도 있다.”
서이숙은 “저랑 소연이가 대본 쥐고 외울 때 필모는 이미 다 준비를 끝마쳐서 둘이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지?’라며 신기해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라고 회상했다. ‘가화만사성’에서 아들과 며느리로 나왔던 이필모, 김소연과의 추억을 더듬던 그에게 그 전작 ‘국수의 신’에 대해 물었다. 그와 조재현이 가만히 서서 대사만 주고받는 데도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아끌었던 장면이 한 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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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국수의 신 방송 캡처 |
“(조)재현선배와 살벌하게 대사를 주고받는 건 정말 재밌었다. 사실 (그 장면들이)시청자들이 편안하게 따라올 만한 대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배우에게는 정말 재밌는 대사였다. 재현선배와 정말 팽팽하게 했다. ‘국수의 신’은 약간 연극 같은 드라마였다. 은유, 상징으로 이뤄진 대사를 주고받으면서 쾌감을 느끼는 연극의 재미가 ‘국수의 신’에도 있었다.”
그는 ‘국수의 신’에 대해 “아쉬운 드라마”라고 말했다. 배우에게는 연기하는 재미를 줬던 드라마였지만, 시청률 면에서 아쉬웠던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것보다 “이 작품을 통해 서이숙을 알렸으면 했다”며 ‘국수의 신’의 설미자 역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만족할 수 있는 건 세상에 없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일희일비하지 말자 싶기도 했다. 왜냐하면 ‘국수의 신’ 설미자는 그동안 제가 했던 악역들과는 조금 달랐고,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힘과 힘’의 싸움을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이끌어가는 설미자에 흥미로움을 느꼈다. 그래서 ‘이 캐릭터로 서이숙을 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랬기 때문에 더 아쉬웠을 것이다. ‘내 역량이 여기까지구나’ 싶기도 했고.”
서이숙은 스스로에게 “크게 보면 내 연기는 ‘확 가는’ 스타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기할 때에는 공감대를 위해 캐릭터의 ‘당위성’을 찾고, 이해를 한 후 행동으로 옮기는 그의 연기는 일상에 가깝다. 일상생활에서 ‘엄청 크게’ 화를 낼 일이 평범한 사람에겐 많지 않다. 비슷한 이치로, 공감대를 기반으로 하는 그의 연기 스타일로는 ‘격한 연기’가 나오지 못한다는 게 서이숙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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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imbc |
그렇게 ‘정적인 연기’를 하는데도 서이숙은 ‘욱룡이나르샤’의 민초부터 ‘푼수기 있는 엄마’, 그리고 ‘차도녀 의사’까지 스펙트럼이 참으로 다양한 배우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저는 자기 혼자 연기하는 배우는 싫어한다. 자기감정에 빠지기보다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연기가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세지지’는 않는다. 이유가 확실하면 화도 덜 내게 되지 않나. 제 연기도 그런 이치라 미적지근한 것 같다. 다행히 ‘목소리 좋다’는 평은 좀 받았다. 이 목소리가 나름대로 똑 부러지고 강한 이미지를 주는 것 같고, 나름대로 망가지는 연기도 가능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런 서이숙에 ‘명장면’을 선사한 이는 바로 ‘요즘 대세’ 라미란이다. 서이숙은 2011년 드라마 ‘짝패’에서 라미란과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그는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라미란과의 호흡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서이숙의 말에 따르면 “고수가 서로를 알아본 격”이었다고.
“(라)미란이와 둘이서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툭 던지고 툭 받는’ 애드리브가 엄청 좋게 나왔다. 미란이를 보며 ‘보통이 아니네’ 싶었는데 지금은 정말 ‘보통 아니게’ 됐다.(웃음) 그의 내공을 나도 느꼈던 거다. 승승장구하는 미란이를 보면 참 기쁘고,
서이숙은 그러면서 “배우는 끝에 묘비명이 새겨질 때까지 승자는 없다”고 말했다. 살아생전에 관객에게, 시청자에 ‘한 두 장면’만 남기면 그게 성공한 배우라고. 그런 의미에서 서이숙 자신은 스스로가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아직도 목마른 서이숙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