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하더라도 표결은 용인..선거통한 국민심판 기약
의회 정치가 태동한 이후 의회 내 폭력 사태는 세계 각국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의회정치가 발전하면서 대부분의 선진 국가에서는 한국식 `난장판 국회'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 됐다.
미국은 100여년 전만 하더라도 의회 내에서 간혹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집단 패싸움을 연상시키는 사활을 건 폭력 사태였다기 보다는 법안 심의 과정에서 일어난 개별 의원간의 주먹다툼이 주류를 이뤘다.
민주주의가 성숙하면서 최근에는 이마저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민주.공화 양당 체제 하에서 치열한 법안 전쟁을 벌이긴 하지만, 물리력으로 법안 처리를 저지하는 모습은 없다.
법안에 반대할 경우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지만 이 방법이 실패할 경우 표결 결과를 받아들이고 이후 2년마다 열리는 총선을 통해 민심의 심판을 받는다.
논의가 시작된지 근 100년만에 올 3월 극적으로 통과된 건강보험개혁법안은 이런 미국의 입법 과정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공화당은 정치적 명운을 걸고 건보개혁법안 처리에 결사 반대했지만, 민주당 다수의 의회가 표결을 실시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막지는 않은 채 `전원 반대표'를 행사하는 것으로 법안 처리를 용인했다.
이후 건보개혁 문제는 올 11월 실시된 중간선거에서 주요 이슈로 등장했고, 공화당은 민주당을 참패시키고 의회 내 다수당 자리를 획득했다.
영국의 경우 1970년대만 하더라도 개별 의원들간의 폭력 사태가 의회 내에서 이따금 벌어졌다. 의회 내에서 비난과 야유는 지금도 종종 발생한다. 이 때문에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지난해 한국, 대만, 우크라이나, 호주와 함께 영국을 `세계에서 가장 무질서한 의회'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물리적 폭력사태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간혹 여야간 공방이 심화돼 소란스런 분위기가 되면 의장이 질서를 뜻하는 `오더(Order)'를 두 세 차례 외치면 수그러든다.
좁은 공간에서 뜨거운 공방과 야유, 조소가 오고가지만 표결을 물리적으로 막거나 의사진행을 심하게 방해하는 등의 질서문란 행위는 없는 것이다.
여야가 마주보고 앉아 있는 가운데 복도에는 여야 의원들이 넘을 수 없는 `스워드 라인(SWORD LINE)'이라는 2개의 선이 있다. 그 자리에 서서 검을 빼들어도 상대방에 닿지 않는 간격이라고 하는데, 끝없는 토론으로 이어지는 영국 의정 문화와 전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독일도 사정은 비슷하다. 야당은 법안에 반대할 경우 토론이나 여론의 압박을 통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더는 법안 표결을 지연시킬 법적 근거가 없을 경우 반대표를 던지는 정도의 의사 표현을 하고 다음 총선을 기약한다.
찬반 양론이 거세게 충돌했던 원자력발전소 가동시한 연장법안은 지난달 28일 수시간의 토론을 거쳐 일부 여당의원들의 반란표에도 불구하고 찬성 308표, 반대 289표로 통과됐다.
당시 녹색당은 반대 표시로 검은 옷을 입고 옷깃에 노란색 십자가를 꽂은 채 의회에 출석했고, 의사당 밖에서는 반핵운동가들이 인간사슬 시위를 벌였지만 의사당 내의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다.
베를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 중 하나로 연간 70만명이 방문하는 의회의 투명유리 돔도 국민의 감시 하에 모든 것을 투명하고, 공명정대하게 처리하겠다는 독일 정치인들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양원제인 프랑스 의회에서는 야당은 헌법에 보장된 필리버스터를 충분히 활용하기는 하지만 의장이 지정한 기일이 되면 곧바로 표결로 결론을 내린다.
프랑스
당시 야당인 사회당 의원들은 토론 종료를 선언한 베르나르 아쿠아예 하원의장에게 반발하며 사임을 요구했을 뿐 별다른 물리적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