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줄곧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며, 유보적 태도를 보였던 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박 후보의 오늘 기자회견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새누리당 후보
-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민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박 후보의 말에서 '사과'라는 말이 들리십니까?
박 후보는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 과거사와 관련해 '사과'라는 말을 쓴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홍일표 전 대변인이 박 후보에게 보고 없이 '사과'라는 표현을 썼다 물러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박 후보가 오늘은 아주 전향적인 견해를 밝힌 셈입니다.
박 후보는 오늘 박정의 전 대통령의 딸이 아닌 대선후보로서 '사과'한다는 말을 명확히 했습니다.
그 얘기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새누리당 후보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민께서 저에게 진정 원하시는 게 딸인 제가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는 것을 원하시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증오에서 관용으로, 분열에서 통합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박 후보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절박함이란 무엇일까요?
단순히 지지율 하락 때문일까요?
최근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은 많이 떨어진 게 사실입니다.
KBS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1~22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집 전화와 휴대전화로 조사한 결과(표본오차 ±3.1% 포인트), 대선주자 양자대결 구도에서 안 후보는 49.9%의 지지율을 얻어 41.2%인 박 후보에게 오차범위를 넘어선 8.7% 포인트 차로 앞섰습니다.
문재인 후보와 박 후보 간 양자대결에서도 문 후보가 45.9%로 45.0%인 박 후보에게 오차범위 안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 하락에는 측근 비리 의혹 등도 있지만, 과거사 인식 논란도 한몫한다는 사실을 박 후보 자신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는 지난 2002년 이회창 대세론이 무너지듯, 박근혜 대세론도 무너지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박 캠프 안팎에서 들릴만합니다.
그런데 박 후보가 단순히 지지율 때문에 과거사에 대해 견해를 바꾼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이제 공식 사과를 했으니 지지율은 자연스럽게 다시 반등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사람들은 박 후보의 '사과'보다는 그 사과가 갖는 진정성을 앞으로 더 눈여겨볼 지 모릅니다..
박 후보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퇴장하면서 '이 사과가 마지막 사과인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앞으로 실천해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그런 진심을 받아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제 충분히 사과했고, 그것을 실천해 나갈 것이니 믿고 지켜봐 달라는 뜻입니다.
박 후보는 실천적 움직임으로 국민 대통합위를 설치해 과거사를 비롯한 국민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앞으로 지지율 반등은 박 후보의 사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과를 실천하는 진정성에 달린 듯 보입니다.
민주통합당은 그런 면에서 박 후보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성호 민주통합당 대변인의 논평입니다.
▶ 인터뷰 : 정성호 / 민주통합당 대변인
- "박 후보는 유신과 5.16 등 그 시절은 과거고, 자신은 미래라고 하는데, 5.16과 유신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현재진행형 사건입니다. 5.16과 유신헌법 체제에 대한 법률적 종결을 국회에서 하는 조치가 나와야 합니다."
박 후보가 앞으로 자신의 진정성을 어떻게 보여줄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박 후보의 진정성을 흔드는 일들이 주변에서는 자꾸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박 후보는 정준길 전 공보위원의 안철수 협박 논란에 이어 유신 옹호 발언을 한 김병호 공보단장을 한 달 만에 교체했습니다.
'과거사 사과' 발언으로 당내 갈등과 불통 논란을 가져온 데 대해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홍일표 대변인도 교체했습니다.
새롭게 공보 진용을 갖추고, 잘해보려 했는데, 어제저녁 예상치 못한 불상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새 대변인이 된 김재원 의원이 일부 기자들과 저녁을 하면서 '박 후보가 자신이 정치하는 이유가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한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박 후보의 오늘 '과거사 공식 사과'는 또다시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김 대변인은 어제 이런 자신의 발언이 곧바로 기사화되고 박 후보와 박 후보 측근으로부터 확인 전화를 받자, 기자들에게 심한 욕을 하며 폭언까지 했다고 합니다.
김 대변인은 오늘 부끄럽다며 사과했지만, '아버지의 명예회복' 발언은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누구 말이 맞건 이런 일이 일어난 것 자체가 진정성을 보여줘야 할 박 후보에게 썩 좋은 것은 아닌 게 분명합니다.
대선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고, 그들을 안심시키려는 대선주자들의 행보는 더욱 빨라질 것입니다.
그 가운데 일부는 단순히 표를 얻으려고 한 말도 있을 것이라고, 눈을 가리려고 겉만 포장한 공약도 있을지 모릅니다.
잘 보고, 잘 찍어야, 앞으로 5년, 아니 대한민국의 내일이 더 나아질 수 있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겠죠.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hokim@mbn.co.kr] MBN 뉴스 M (월~금, 오후 3~5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