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90일도 채 남지 않아 후보들끼리 서로 네거티브 난타전을 벌일 만 한데, 제법 신사적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어제 과거사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했습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새누리당 후보
-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민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박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사과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야권은 그동안 박 후보가 아버지의 딸이라는 인식의 한계에 갇혀, 대통령 후보로서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박 후보가 그 비판의 고리를 확실히 끊은 걸까요?
어제 뉴스 M에 출연했던 이정현 공보단장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이정현 / 새누리당 공보단장
- "딸로서가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한마디로 말해서 정치인으로서 박근혜가 박정희를 평가하는 참 우리나라 풍토에서는 쉽지 않은 자식이 부모를 평가하고 그것도 공개적으로 과오를 지적한다고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오늘 그러한 과오들을 진솔하고 분명하게 종합적으로 지적을 했고 또 사과도 했습니다."
박 후보가 태도를 바꿔 사과를 한 것은 지지율 하락 때문이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박 후보가 사과한 것은 지지율 하락 때문이라면서 진정성이 없다고 비판할지 모릅니다.
특히 야당 지지자들은 더더욱 그렇겠죠.
그런데 정작, 야권의 대선 후보들은 박 후보의 사과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했습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문재인 / 민주통합당 후보
- "박근혜 후보께서 유신과 5.16, 인혁당 사건에 대해 사과를 했거든요. 아주 힘든 이야기였을 텐데 아주 잘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환영합니다. 역사는 이제 좀 제대로 정리해서 국민의 화합 통합 그렇게 가는 출발이 됐으면 합니다."
문 후보는 그러면서 이제 '정수장학회 등 과거사 문제도 매듭짓고 가야 한다는뜻이냐'는 기자들 질문에 '오늘은 그런 얘기로 계속 토를 달고 싶지 않다. 오늘 박 후보가 했던 사과만큼은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환영한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도 박근혜 후보를 비판했던 문재인 후보이기에, 문 후보의 논평에 어쩌면 어리둥절한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문 후보는 박 후보가 대선 후보로 선출된 다음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을 때도 환영한다는 논평을 했기에 이번 논평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 역시 예상 밖의 논평을 내놨습니다.
들어보시죠
▶ 인터뷰 : 이해찬 / 민주통합당 대표
- "최근에 박근혜 후보가 드디어 5.16과 유신 두 가지 문제에 대해 헌법의 가치를 훼손했다고 인정했습니다. 아마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인혁당에 대해서 재심 났을 때 자기를 모함하는 것이라고 발언했습니다.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려고 정치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던 분이 이제 와서 헌법의 가치를 훼손했다고 말해서 저도 진정성 있다고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민주통합당은 앞으로 이 진정성이 제대로 실천되는지 두고 볼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경쟁 후보를 칭찬하기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안철수 후보 역시 박 후보 사과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했습니다.
안 후보의 말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안철수 / 무소속 후보
- "쉽지 않은 일이신데, 정말 어려운 결단을 하셨습니다. 이 시점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역사 힘든 역사에서 배우고 교훈으로 삼아 미래로 나아가는 쪽에 힘을 모으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진정성이 있다고 보나요?) 예 그렇다고 봅니다."
박근혜 후보의 사과, 그리고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긍정적인 평가만 놓고 보면, 올해 대선은 흑색선전이 난무했던 과거와는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안철수 후보가 제안했던 세 후보의 만남도 성사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서로 잘한 일은 잘했다고 평가하며 선의의 경쟁으로 대선이 치러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왠지 그럴 것 같지 않다는 비관적 생각도 듭니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그리고 지지율이 초박빙을 보일수록, 가장 효과적인 선거 전략은 '검증'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정책 검증이 아니라, 그 후보의 과거와 개인사를 검증해 뭔가 꼬투리를 찾아내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각 캠프에서는 상대방 후보에 대한 검증 준비를 본격화한다는 말도 들립니다.
그런 악마의 유혹은 참으로 떨쳐내기 어렵겠죠.
하지만, 세 후보가 이런 유혹을 떨쳐낸다면 선거가 끝나고 나서도 우리 정치가, 사회가 양분돼 서로 싸우는 일은 확연히 줄어들 겁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민이 바라는 '통합의 정치'를 실현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부터 누가 선의의 경쟁을 하려 하는지, 누가 네거티브 검증으로 우리를 짜증 나게 하는지 잘 지켜볼 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MBN 뉴스 M (월~금, 오후 3~5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