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전에는 늘 어수선함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양상이 다른 것 같습니다.
새 정부를 이끌 총리와 장관들, 그리고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모들이 언제 결정되는지, 또 누구인지 도통 알길이 없습니다.
정권 인수 인계를 맡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막강 권력의 산실인 인수위원회는 힘이 빠진 채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당선인이 직접 챙길 것이라는 각 분과의 국정과제 토론회는 뚜렷한 이유없이 연기되거나 취소됐습니다.
문턱이 닳도록 인수위를 찾았던 공무원들은 발길을 뚝 끊은 채 국회 의원들을 찾아 다니기 바쁩니다.
인수위가 엄중 경고했지만, 자기 부처에 유리한 쪽으로 정부조직개편을 수정하려는 공무원들의 발길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듯 보입니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총리 후보로 지명됐다가 낙마하면서 인수위 힘은 더 빠지는 게 역력합니다.
급기야 현직 장관이 박 당선인과 인수위에 반기를 드는 초유의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김성환 외교부 장관은 어제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외교부의 통상기능을 지식경제부(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하는 것은 헌법의 골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김성환 장관의 말입니다.
▶ 인터뷰 : 김성환 / 외교통상부 장관
-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따르면) 우리 헌법과 정부조직법의 골간을 흔드는 결과가 초래돼서 대외 관계의 안정성과 일관성을 기할 수 없을 것으로 우려됩니다."
외국과 교섭 체결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데, 이것을 교섭 협상을 하는 개별 정부부처와 나누는 것은 위헌이라는 겁니다.
여당 정책위의장인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은 김 장관의 발언을 '궤변'이라고 맞받아쳤습니다.
▶ 인터뷰 : 진영 / 인수위원회 부위원장
- "헌법을 흔드는 것처럼 얘기했다면, 그것은 헌법과 법률상식에 어긋나는 궤변이고 부처 이기주의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어 유감을 표시합니다."
교섭 체결권은 대통령의 권한이지, 외교부 장관의 권한인 것처럼 착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법적인 논란을 떠나 현직 장관의 반기와 이에 대한 인수위의 정면 반박은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박 당선인이 바로 전날 외교와 통상 분리에 대해 부처간 이기주의와 칸막이만 없으면 문제 될 게 없다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는데도 현직 장관이 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이 '부처 이기주의'라며 격하게 비판한 것도 비단 외교부 뿐 아니라 정부 조직개편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관료 사회에 대한 경고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벌써부터 관료들이 말을 듣지 않는데, 앞으로 5년은 얼마나 더 심할까 하는, 그래서 지금 이른바 군기를 잡아야 한다는 위기감도 깔려있는걸까요?
공무원들이 이렇게 인수위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총리와 각 부처 장관 인선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당선인의 철학과 국정 운영 방향을 이해하는 새 총리와 새 장관이 지명되면, 공무원들이 그렇게 행동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제 총리와 장관이 임명될 지는 아무로 모릅니다.
설 이후에 인선이 있을 것이라는 말도 들립니다.
또 청와대 비서실장을 먼저 하고 나중에 총리 인선을 할 것이라는 말에서 다시 총리를 먼저하고 나중에 비서실장을 인선하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말이 들립니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사람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철통 보안을 강조하는 당선인 인사스타일 때문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예측과 관행을 비켜가는 '박근혜 타이머'가 작동하고 있다는 우스개 소리도 들립니다.
이동흡 헌재 소장 후보자에 대한 여당의 태도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자진사퇴에 무게감이 실렸던 새누리당 지도부의 분위기는 국회 본회의 상정과 표결 처리로 바뀌었습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황우여 / 새누리당 대표(2월4일)
- "정상적인 기간 내에 후보자나 지명자가 결단을 하면 모르되, 지명의 철회나 후보 사퇴 강요가 된다면 폭거요 청문특위 본연의 업무를 못한겁니다."
표결에 부쳐진다면, 이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새누리당 지도부의 생각이 바뀌었다면, 혹 박 당선인의 의중이 반영된 것일까요?
후보자는 큰 흠결이 없는데, 인사청문회 제도 탓에 만신창이가 된 것이니 본회의 표결을 통해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의중이 반영된 것일까요?
박 당선인의 복심인 이정현 최고위원 겸 당선인 비서실 정무팀장은 현 청문회 인사시스템의 문제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잠깐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이정현 / 새누리당 최고위원(1월4일)
- "자칫 인사청문회가 인사 설문회가 되가는 경향도 없지 않습니다. 청문회 제도와 시스템 있지만 지나친 설위주로 해서 평생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온 분들이 개인적인 명예훼손이나 가족들까지 곤욕을 치르는 사례가 있어서 유능한 사람들이 공직제안에 가족들의 반대로 거절되는 사례가 있습니다. 우려됩니다."
박 당선인의 의중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어쨌든 최근 박 당선인에 대한 국정 수행 기대 지지율이 50% 초반으로 떨어진 것은 국민이 인수위 활동과 인선 과정에서 그만큼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런 혼란은 새 정부 출발에 걸림돌이 될 게 자명합니다.
당선인도 물론 고심이 크겠죠.
때가 되면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던 박 당선인 특유의 스타일이 이번에도 나올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