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으로는 다시 위기를 넘겼으니 다행이다 싶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우리는 '극한' 대치와 '소강'상태를 수없이 오가야 하는지 답답하기도 합니다.
북한은 오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남한 정부의 적대행위가 계속되면 남북대화는 있을 수 없다'고 거듭 주장했습니다.
들어보시죠.
▶ 인터뷰 : 북한 조평통 대변인 담화
- "괴뢰패당이 미국과 한 짝이 되어 우리의 우주개발과 핵무력 강화를 함부로 걸고 들면서 반공화국 '제재', 압살 책동에 가담하고 조선반도에 최신 전쟁장비들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이며 군사연습을 벌이는 적대행위와 북침전쟁책동이 계속되는 한 북남대화나 북남관계 개선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형식적으로 보면 북한은 대화를 거부한 게 맞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대화를 거부하겠다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조건을 달았기 때문입니다.
'대화 여부는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에 달렸다', '대화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대화를 원한다면'이라는 말이 항상 나옵니다.
조건을 달았다는 건, 그 조건만 충족되면 그래도 대화할 의사는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요?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흔적도 엿보입니다.
개성공단을 담당하는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16일 발표한 비망록을 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역도라고 비난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청와대 안방주인'이라고 나름 격을 갖췄습니다.
김관진 국방장관의 사진을 붙여놓고 사격훈련을 하고, 군견이 물어뜯게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북한은 어쩌면 지금 우리와, 미국과, 간절히 대화를 희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말하는 조건을 들어주면, 다시 말해 명분을 주면,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올까요?
북한이 말하는 조건은 자신들을 향해 한미 군사 훈련을 하지 말고, 자신들의 존엄을 훼손하지 말라는 겁니다.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북미 적대관계 해소, 나아가 자신들의 체제를 보호해 줄 평화체제 정착을 희망하는지도 모릅니다.
북한은 아마도 우리와 미국이 이 조건을 들어줄 때까지 핵실험을 계속할 것이고, 미사일 발사 위협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와 미국은 이것을 들어줄 수 있을까?
가능성은 작아 보입니다.
지난주 우리나라를 찾았던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존 케리 / 미국 국무장관
- "북한이 스스로 받아들였던 국제적 의무와 표준을 지킬 준비가 되고, 비핵화로 나아갈 것을 분명히 밝힌다면 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케리 장관은 말은 자칫 '선 대화' '후 비핵화 논의'로 비치기도 했지만, 미국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고, 대화를 하고 싶으면 도발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는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말입니다.
'내가 분명하게 해온 한가지는 도발적 행동에는 보상하지 않는 것이다. 테이블 위를 숟가락으로 치며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도 다시 강경모드로 바뀌었습니다.
지난 11일 박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가동할 것이라며 북한과 대화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이를 거부하자, 강한 유감을 표시했고 이때부터 다시 강경모드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대통령(4월17일)
- "위협과 도발을 하면 또 협상과 지원을 하고 위협과 도발이 있으면 또 협상과 지원을 하는 그런 악순환을 우리는 끊어야 합니다."
북한은 우리에게 북미 관계 개선과 체제 안정 보장을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고, 우리는 북한에 먼저 도발을 멈출 것을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양상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평행선 달리기가 적어도 한미 군사훈련이 끝나는 이달 말이나 다음 달 7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까지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안에 북한이 미사일을 쏠 가능성도 있지만, 당분간 이런 '저강도' 대치 국면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입니다.
남과 북의 대치 국면에서 눈물을 쏟는 것은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입니다.
북한은 어제 의약품과 식료품이라도 전달하겠다는 기업인들의 방북을 불허했습니다.
▶ 인터뷰 : 한재권 /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
- "북측 당국에 촉구합니다. 입주기업의 숨통이 끊기지 않게 우선 물류 차량의 통행만이라도 즉각 재개해 주기를 바랍니다."
▶ 인터뷰 : 오흥기 / 개성공단 입주업체 근로자
- "안에 있는 분들도 다 고생하고 계시고요, 그분들이 좀 더 고생이 안 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부식이 떨어진 우리 쪽 근로자들은 직접 들에 나가 쑥을 뜯어 된장국을 끓여 먹고 있다고 합니다.
개성공단 공장에 쌓여 있는 제품만이라도 가져와 제때 팔고 싶지만, 북한은 모른척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 기업들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요?
남북 당국만 믿고 개성공단에 들어간 기업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남북간의 지루한 대치국면이 이어지면, 개성공단이 자칫 제2의 금강산이 될 수도 있습니다.
뭔가 돌파구가 없을까요?
개성공단의 눈물이 멈출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