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의원의 처지가 딱하게 됐습니다.
'십고초려'까지 하며 영입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 직을 사퇴했기 때문입니다.
이사장을 맡은 지 80일 만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최 교수가 차기 대선 후보인 안 의원 곁을 떠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뭘까요?
최 교수의 사퇴의 변입니다.
▶ 인터뷰 : 최장집 / 정책네트워크 내일 이사장
- "정치학자로서 연구소의 정책 개발이나 안 의원의 거시적인 정치 전략 등을 조언하고 딧받침하는 정책프로그램을 짜기를 바랐는데 실제로는 연구소의 역할이 정치 세력화 문제와 중첩되면서 부담스러워 사직했다."
자신은 정책 조언자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연구소가 신당창당이나 세력 조직화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을 감당하기 힘들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런 최 교수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최 교수와 안 의원이 정치적 지향점이나 행동 방식에서 갈등이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분분합니다.
최 교수가 이사장을 맡으면서 일갈한 노동자 중심 정당 건설과 진보적 정치의 기조가 합리적 보수와 진보의 영역을 넘나드는 안 의원의 기조와 충돌했다는 겁니다.
실제로 안 의원은 최 교수가 노동자 중심 정당을 언급하자 최 교수 개인의 생각이라고 선을 그은 적도 있습니다.
여기다 최근 논란이 됐던 NLL 문제와 국정원 선거개입에 대해 최 교수는 안 의원이 보다 분명한 입장 표명을 하길 바랬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안 의원은 새누리당도 잘못했고, 민주당도 잘못했다는 식의 양비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양비론은 비판이지 행동이 아닙니다.
최 교수는 안 의원이 사회 정치적 현안에 대해 강 건너 불 보듯 평가만 할 것이 아니라, 사안의 중심에 뛰어들어 직접 해결하는 적극성을 바랬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는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안 의원 스타일과 맞지 않습니다.
'염화미소'인 듯 웃음을 머뭄고 있지만, 도대체 그 미소 뒤에 무슨 생각이 있는 지 알 길이 없는 게 바로 안 의원입니다.
이는 직설적 화법을 구사하는 최 교수와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쯤되면, 최 교수와 안 의원의 결별은 '정치적 결별'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안 의원 곁을 떠난 사람이 최 교수가 처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청춘 콘서트'를 열며 안 의원의 '정치적 멘토'로 불렸던 윤여전 전 환경부 장관도 안 의원 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는 문재인 의원 캠프로 건너가 안철수 의원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김종인 전 의원 역시 안철수 의원을 돕다가 결별한 뒤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에서 안 의원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안 의원 곁을 떠난 뒤 공통적으로 한 말은 '안 의원이 중요한 순간 결단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정치적으로 미숙한 한계를 보인다' 등이었습니다.
안 의원의 정치 역량과 상황판단력에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최 교수 역시 안 의원의 이런 문제점 때문에 결별을 한 것일까요?
이게 사실이라면 안 의원은 용인술 문제를 넘어 대권 후보로서 기본적인 자질에 큰 부족함이 있다는 뜻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일반 국민들도 서서히 안 의원 곁을 떠나고 있습니다.
디오피니언이 지난 7일 '안철수 신당'을 포함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정당 지지율은 새누리당 27.9%, 안철수 신당 24.6%, 민주당 10.2%, 기타 정당 3.6% 등의 순이었고 '지지 정당 없다'가 33.7%였습니다.
안철수 신당이 여전히 민주당의 두 배이지만, 특이한 것은 안철수 신당을 지지하지 않는 신무당파가 33.7%나 됐다는 겁니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안철수 신당을 지지하지 않는 무당파는 40%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무당파 대부분을 흡수했던 안철수 신당에 대한 기대감이 이제 꺾였다는 뜻일까요?
어제 시사마이크에 출연했던 윤여준 이사장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윤여준 / 여울 이사장
- "아직까진 존재감의 위협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국민들이 기다리는 기대가 길어지니까 실망하는 사람도 있고 염증이 생기는 사람도 있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이 늦어지고, 정치세력화가 늦어지면 늦어질 수록 염증을 느끼고 안 의원을 떠나는 사람은 더 많을 지 모릅니다.
최장집 교수도 그 가운데 한 명일지도 모르고요.
물론 안 의원 쪽은 이런 해석이나 갈등설을 부인하고 있고, 최
그러나 당장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안 의원의 정치적 역량이 다시 시험대에 오른 셈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