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 사람은 함께 가는 동반자이자, 피할 수 없는 경쟁자이기도 합니다.
안철수 의원은 어제 박원순 서울시장과 만났습니다.
함께 서울 광화문 거리를 걸었고, 교보문고에서는 서로 책도 선물했습니다.
안 의원은 박 시장에게 쿠발 출신 이탈로 칼비노가 쓴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선물했습니다.
박 시장은 초고령화 사회에 대비해야 한다는 뜻으로 베이비붐 세대들의 인생 보고서인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를 선물했습니다.
서로 이 책을 준 의미가 뭘까요?
▶ 인터뷰 : 안철수 / 새정치민주연합 추진단장(어제)
- "이 책 보시면서 지금 서울은 어디쯤 와있고 앞으로 우리가 꿈꾸고 만들어가는 도시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여러 가지 다양한 생각들을 통해서 시장님께서 영감 얻으시면 정말로 좋겠다는 생각에…"
▶ 인터뷰 : 박원순 / 서울시장(어제)
-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이 책이) 관계된 것이어서 의원님이 앞으로 국회에서 큰 역할 하실 것이기 때문에 국가적 과제로도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해서 이 책 골랐습니다."
두 사람의 설명을 들어보니, 안철수 의원은 박 시장이 서울 시장을 더 잘할 수 있게 책을 준 것이고,
박원순 시장은 안 의원이 국가 아젠다인 고령화 사회를 잘 풀어내라고 준 것으로 들립니다.
안 의원이 보건복지위 소속이니 고령화 관련 책이 별로 이상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박 시장은 안 의원이 대선주자임을 부각시켜준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반면, 안 의원은 박 시장이 서울 시장을 한 번 더 하라고 격려해준 것 같습니다.
사실상 박 시장에 대한 공개지지로 보일 법합니다.
그런데 이 역시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안 의원은 박 시장이 시장 외에 대선 주자로 부각되는 것은 그다지 염두에 두는 것 같지 않습니다.
안 의원은 박 시장을 '서울 시장'으로서만 보고 싶어하는 걸까요?
속내야 어찌 됐든 두 사람이 나란히 광화문을 걷는 '아름다운 동행'은 사람들에게 3년 전 '아름다운 양보'를 떠올리게 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 : 안철수 /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2011년 9월6일)
- "저에게 보여주신 기대 역시 온전히 저를 향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리더십에 대한 변화의 열망이 저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 여깁니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 선거 출마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인터뷰 : 박원순 / 희망제작소 상임이사(2011년 9월6일)
- "좋은 세상,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기 힘든 이런 결론을 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박원순 시장 못지않게 문재인 의원에게도 '아름다운 양보'(?)를 했던 안철수 의원은 문 의원과는 그다지 좋은 만남을 이어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난주 토요일 새정치민주연합 부산시장 창당대회에서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참으로 어색 해보였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의식한 듯 웃음을 띠며 간간이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연단만을 응시한 두 사람의 불편한 자리는 한 시간 정도 이어졌습니다.
불편하다는 표현이 혹 부적절할 수 있지만, 안 의원과 문 의원의 만남은 확실히 안 의원과 박 시장과 만남과는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두 사람의 만남 전후 얘기입니다.
▶ 인터뷰 : 문재인 / 민주당 의원(19일)
- "(안철수 의원과 만날 계획 있나?) 안철수 의원과는 뭐 오며 가며 보기도 하고 연락도 하고 있고 어 또 보게 될 테고…. (안철수 의원 소주 못한다고 하니 차라도 한잔하실 생각은) 예, 아마 곧 만나게 될 겁니다."
▶ 인터뷰 : 안철수 / 새정치민주연합 공동추진단장(22일)
- "제 고향 부산은 대한민국 그 어느 곳보다 새정치가 필요합니다. 새정치로 진정성 있는 변화를 이끌어 내고…."
문 의원으로서는 만남 직전 터져 나온 한상진 교수의 '정계 은퇴론'에 불쾌했을 수 있습니다.
한 교수는 안철수 의원의 멘토이자, 민주당의 대선평가위원장 당시 문 의원을 비롯한 친노세력에게 대선 패배의 직접적 책임이 있다고 해 친노세력으로부터 반발을 샀던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다시 문재인 의원의 책임론을 들고나왔으니, 문 의원과 안 의원의 만남이 불편할 수 밖에요.
그런데 왜 하필 한상진 교수는 두 사람의 만남 하루 전날 이 말을 했을까요?
통합 발표 이후 호남에서조차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안철수 효과'에 대해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시점에 말입니다.
통합신당의 지지율 하락 책임을 안 의원이 아닌 쓴소리를 하는 친노세력과 문재인 의원에게 돌리려 하는 걸까요?
지나친 해석일까요?
안철수 의원의 다른 두 행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해집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