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목함 지뢰로 우리 병사 두 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그러나 사고 직후 그들이 보여준 자세는 참으로 칭찬받을 만 합니다.
위축되지 않고 부상당한 병사를 안전 지역으로 대피시키려 했고, 주변 경계를 강화하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습니다.
만일 오합지졸이었다면, 폭발음에 놀라 혼비백산했을 것이고, 움츠려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달랐습니다.
오늘 기자회견장에 나선 수색대원들의 얘기입니다.
▶ 인터뷰 : 문시준 / DMZ 지뢰폭발 수색대대 소위(오늘 기자회견)
- "지금 심정으로는 다시 당장 DMZ로 돌아가 해당 적 소초(GP)를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밖에 없습니다. 아군이 느낀 고통의 수만 배를 갚아주고 싶은 마음밖에 없는데, 기회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이 되돌아가 북한을 응징할 방법은 없습니다.
남은 건 앞으로 있을 기회 아닌 기회입니다.
응징할 기회가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민구 국방장관의 말입니다.
▶ 인터뷰 : 한민구 / 국방장관 (오늘)
-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 작전이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데요?) 위축되지 않을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DMZ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을 실시할 것입니다."
DMZ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을 실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군사분계선 지역은 말그대로 비무장지대입니다.
정전협정에 따라 교전이 있어서는 안되는 일종의 완충지대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이런 식으로 원점을 교묘하게 회피하는 방식으로 우리 군에 피해를 준다면 그저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국방장관의 말에 따라 우리 군은 비무장지대의 수색·정찰작전 개념을 저지에서 격멸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군사분계선을 넘는 북한군에 대해서는 '경고방송-경고사격-조준사격'으로 대응해왔던 수칙도 '조준사격'으로 단순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군이 비무장지대 내에서 보이면 경고 없 이 쏜다는 뜻입니다.
수색 장소와 작전 시간을 대폭 늘리기로 했습니다.
북한군이 우리 군의 수색 장소와 작전 시간을 훤히 꿰뚫고 있고 그 장소와 시간을 회피해서 도발하거나 지뢰 등을 매설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한 만큼 당분간 비무장지대의 긴장감은 극에 달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궁극적으로 옳은 방향인지는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할 듯합니다.
적이 도발하지 못하도록 호되게 보복할 필요는 있지만, 이는 더 큰 불상사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당하고만 있으면 더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다고 가장 강한 수단을 동원하면 정말 예상치 못한 국면으로 남북의 긴장감이 터질 수 있습니다.
대북 확성기 방송 역시 그렇습니다.
북한이 두려하는 심리전이라는 측면에서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복수 수단입니다.
북한군은 비가 오니 빨래를 걷으라는 우리 군 방송을 듣고 진짜 빨래를 걷을 정도라고 하니까 분명 효과가 클 겁니다.
효과가 큰 만큼 북한군을 더 자극할 게 뻔합니다.
북한이 그동안 확성기에 대해 조준사격을 하겠다고 한 만큼 교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 군 역시 이번에는 참지 않겠다고 한 만큼 확성기가 설치된 지역은 초긴장 상태입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전방지역에는 이미 최고 수준의 경계태세(A급)가 발령됐습니다.
당근과 채찍, 둘 다 필요한 것이지만 언제 어떤 수단을 쓰느냐는 전적으로 판단의 몫입니다.
지금 우리가 채찍을 꺼내드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최악의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수 밖에요.
어찌보면,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남북관계의 냉각이 너무나 오랫동안 지속돼왔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북한 잘못이 크지만, 이런 북한을 효율적으로 다루지 못한 우리 정부 역시 책임이 없다 말하기는 힘듭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DMZ에서 목함 지뢰 폭발사고가 발생한 다음 날 파주에서 열린 경원선 복원 행사에 참석해 DMZ를 평화공원으로 만들자는 구상을 거듭 밝혔습니다.
이날은 이희호 여사가 방북한 날입니다.
이날 우리 정부는 개별적으로 북한에 고위급 접촉을 제안했습니다.
전날 목함 지뢰로 우리 병사가 다쳤음에도 그 다음날 대통령과 정부는 북한에 화해 제스처를 보낸 겁니다.
당근과 채찍의 타이밍을 잡지 못한 셈입니다.
문제는 타이밍입니다.
북한을 너무 느슨하게 대해서도 안되지만, 그
언제 당근을 써야 효율적일지, 언제 채찍을 들어야 효율적일지 그 판단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국방부와 통일부, 청와대가 일관되게 호흡을 맞춰야 합니다.
지금 그 호흡이 맞고 있는지부터 점검할 일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