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기간 한·중·일 동북아 3국 정상이 모두 미국 뉴욕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참석한다. 올해는 특히 유엔 창설 70주년을 맞아 전세계에서 160여명의 국가원수와 정부 수반이 대거 참석해 이들을 상대로 한 정상들의 치열한 유엔 외교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다자무대의 꽃’인 유엔총회 성격상 유엔총회 연설이라는 눈에 보이는 외교 외에도 막후에서 보이지 않는 다양한 양자, 다자 외교전도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 통해 창설 70주년을 맞이한 유엔의 성과와 향후 목표와 함께 한반도 문제 등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다. 박 대통령은 유엔 방문기간 정상들과 다양한 접촉을 통해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나 4차 핵실험 등 노동당 창건일(10월10일) 전후로 예상되는 무력도발을 억지하기 위한 정상외교를 펼치는데 초점을 맞출 전망이다. 또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박 대통령의 비전을 국제사회에 제시하고 이에 대한 지지확보와 공감대 형성에 힘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유엔총회가 다자무대인 점을 감안해 개발, 기후변화, 보건, 교육, 난민 및 이민 등 각종 글로벌 이슈에서 우리나라의 입장과 기여 의지를 알리면서 중견국으로서의 대한민국 위상을 제고하는데도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25일 미·중 정상회담 이후 28일 유엔총회 연설에 나선다. 시 주석은 2013년 집권한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유엔총회 연설자로 데뷔하게 되는 것이다. 시 주석은 G2 국가로서 중국의 위상을 알리고 이에 맞는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9일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최근 안보법제에 통과에 대한 자국의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특히 집단자위권 행사 등 안보법제의 뼈대가 된‘적극적 평화주의’에 대해 국제사회에 설명할 것으로 관측된다.
박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 이후 귀국길에 오를 예정이어서 다음 날 아베 총리의 연설을 직접 들을 기회는 없을 전망이다. 하지만 다자회의 특성상 총회 참석을 전후해 아베 총리와 조우할 기회가 많고 약식 양자·다자 회담을 가질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양국 정상이 함께 참석하는 특별세션에서 한일 정상이 마주칠 경우 서로 모른척하고 지나가는 것이 오히려 어색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한·일 정상이 우연하게 만나 자연스럽게 회동하는 ‘약식 정상회담’(pull-aside meeting) 가능성도 있다. 물론 정상의 움직임에 ‘우연’은 있을 수 없다. 조우를 가장한 ‘기획성’정상회담이 이뤄질 개연성은 충분하다. 북 도발 억지와 일본 안보법제 통과라는 현안들이 있어 한·일 양국 정상이 만날 명분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만 기교를 싫어하는 박 대통령의 외교 스타일로 볼 때 우리 측이 먼저 정상회담을 제의하기 보다는 일본 측이 제의할 경우 이를 수용할 확률이 높을 것으로 분석된다.
외교통상부 2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10월 말 또는 11월 초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정상회담이 있을 수 있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기 보다는 일본 안보법제 통과와 북한 미사일 발사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이 오히려 적기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번 유엔총회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을 약식이라도 하는 것이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는데도 효과가 있고 10월 중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의 의제를 관철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을 계기로 이번달 초 한·중정상회담이 이뤄졌지만 북한 미사일 도발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중간 다시 한 번 약식 정상회담을 열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는 가운데 시 주석이 ‘북핵불용’을 천명할 지도 주목된다.
일본의 중국 전승절 불참과 안보법안 통과로 중·일간 냉기류가 흐르고 있는 가운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중·일 정상간의 만남도 상정해볼 수 있다. 국제사회에선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30일 오전 뉴욕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갖고, 한·일관계, 지역 협력 및 여타 상호 관심사에 관해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하지만 윤 장관과 리수용 북한 외무상과의 남북 만남은 물리적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
외교부 고위관계자는 “리수용 북한 외무상은 10월1일 유엔총회 연설이 예정돼 있는데 우리는 현지시간 30일 밤에 뉴욕을 떠나게 된다”고 밝혔다.
[김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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