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등 청와대 핵심 참모진이 이례적으로 국회를 방문해 정의화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에 테러방지법 등 쟁점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요청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국정원이 첩보 수준의 정보를 흘려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는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등 여야는 팽팽한 대립을 이어갔다.
19일 오전 이 비서실장, 현정택 정책조정수석, 현기환 정무수석은 국회를 방문해 정 의장과 여야 지도부를 잇따라 만났다. 청와대 참모진은 최근 북한의 핵 실험·미사일 발사에 이어 테러 획책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됨에 따라 테러방지법을 우선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방을 먼저 방문해 전날 여야 지도부 ‘4+4’ 협상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본회의 법안 처리 전략에 대한 의견을 나눈 청와대 참모진은 이후 30여분간 정 의장과 만남을 가졌다. 이 비서실장은 기자들과 만나 “답답해서 (국회에) 왔다”며 “직권상정을 요청하러 온 것은 아니다. 테러방지법 등 계류돼 있는 법안을 잘 처리해달라는 희망사항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곧바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실로 향한 청와대 참모진은 김 대표와 15분동안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테러방지법 필요성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국정원에 대한 불신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비서실장은 정보 분석 기능을 국민안전처가 아닌 국정원에 맡겨야하는 이유와 필요성을 강조하며 “나도 국정원장을 해봤지만 ‘정치관여라는 단어는 머릿속에서 지우라’고 지시한 바 있고 지켜지고 있다”며 “이 정부 들어서 특정 정치인 뒷조사를 하거나 정치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이 비서실장에게 “(여당이)자꾸 (쟁점법안을) 선거법과 연계시키는데 선거법부터 해결하면 따로 논의가 가능하지 않겠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비서실장은 이후 기자들의 질문에 “청와대에서는 연계하라고 한 적이 없다”라며 “선거구는 국회의 일이지 내가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를 찾았다. 이 비서실장은 이날 국회 방문에서 만족할 만한 반응을 얻었냐는 질문에 “(법안 처리라는)결과가 나와야 만족할 수 있다”라고 답했다.
청와대 참모진이 국회를 방문한 것은 그만큼 정부가 대남테러 등 북한 도발에 대한 위기의식을 강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의 테러 가능성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걱정이 크다”며 “이를 예방할 수 있는 핵심법안이 국회에서 공전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심각성을 전하기 위해 비서실장이 직접 국회를 방문한 것”이라고 전했다.
새누리당도 이에 보조를 맞추며 정 의장과 야당을 동반 압박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OECD와 G20 회원국 중에 테러방지법이 없는 나라는 겨우 4곳에 불과하다”며 “통신정보이용과 금융정보이용은 서면에 기록이 다 남기 때문에 어떤 권한도 남용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몽니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테러에 무방비상태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야당을 비판했다.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도 “지금은 안보위기 상황”이라며 “야당이 진행을 못하면 의장께서 직권상정을 해주시면 된다. 오늘까지도 야당에서 답을 못주면 특단의 조치를 요청 드린다”고 정 의장을 압박했다.
그러나 이종걸 더민주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 선거대책위 연석회의에서 “김정은의 (대남테러) 직접 지시가 사실이라면 1급 테러경계령이 내려지고, 김종인 비대위 대표나 야당 원내대표인 저한테도 경호 협의가 있을 텐데 전혀 없다”면서 “국정원도 김정은의 테러지령설을 첩보 수준으로 판단하는 단계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런 첩보 수준을 갖고 국정원 중심의 테러방지법을 신속하게 처리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우제윤 기자 / 김명환 기자 /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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