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선거에서 충청지역은 민심의 '바로미터'였다. '노무현 바람'이 불었던 16대 대선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충청에 기반을 둔 이회창 당시 후보를 대전·충북·충남에서 모두 제압했고, 2012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는 세종시를 포함한 충청권 전역에서 승리한 덕분에 턱밑까지 추격해온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를 따돌렸다.
'민심 바로미터'였던 충청 표심이 이번에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로 요동치고 있다. 특히 충청에 기반을 둔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상승세가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세론을 꺾고 '충청 대망론'으로까지 번질 지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기존 보수성향 유권자들 사이에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조금씩 시선을 돌리는 모양새다. 지난 4~5일 충청을 찾아 지역 민심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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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다는 대전역. 이곳을 찾은 4일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스크린을 통해 뉴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로 안희정 충남도지사에게 표심이 쏠릴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시민들은 "(안)희정이가 뜨는 것 같은디", "그래도 너무 젊은 거 아닌가"라며 저마다 이야기를 나눴다.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것이 충청 표심'이라는 말처럼 대부분의 시민들은 대선 전망에 대해 말을 아꼈다. 좀처럼 속내를 표현하지 않는 와중에도 충청 민심은 안 지사 상승세가 반 전 사무총장의 '충청대망론'을 흡수할지에 관심을 갖는 모양새였다.
대전 중앙시장에서 만난 오명순씨(58·여)는 "사실 안 지사가 문재인 전 대표를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면서도 "최근 지역 어머니 모임에서 안 지사가 이야기 주제가 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지난 번 대선에서도 '어머니 표심'이 박근혜 대통령을 몰아준 것이 아니냐"고 했다. 대전에서 공인중개사를 하는 김영호씨(60·남)는 "반 전 사무총장 사퇴로 대전 지역에서 60~70대는 상당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여권 성향의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한다"며 "차선책으로 '안희정이 대안'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문 전 대표를 넘을지는 모르지만 상당한 대안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안 지사가 '충청 대망론'을 흡수할 것으로 기대하는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전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임창희씨(50·남)는 "반 전 사무총장이 사퇴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안 지사에게 표심이 쏠리겠느냐. 2주 정도 더 기다리면 표심이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세론'을 형성한 문 전 대표 지지 역시 만만치 않았다. '대전 토박이'로 65년을 살았다는 이모씨는 "(안)희정이는 과일로 비유하면 아직 '풋사과'여. 문재인은 '알밤'이고"라며 "(알밤) 속이 다 찼는지 안찼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래도 먹을 때가 됐구먼. 희정이는 그 다음"이라고 했다. 중앙시장에서 과일을 파는 성모씨(58·남) 역시 "탄핵 정국 속에서도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단골 할머니들도 10명 중 2명 꼴로 '이번에는 문재인을 뽑아야 겠다'고 한다"며 "뉴스를 보면 안 지사 지지율이 오르는 것 같지만 '시장민심'까지 번졌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충청대망론'에 대해서도 저마다 생각이 엇갈렸다. 충남 예산에 거주하는 심제택씨(78·남)는 "반 전 사무총장이야 사실 충북 사람 아니냐"면서도 "반 전 사무총장이 충청 민심에 좀 더 불을 지폈다가 물러났으면 안 지사한테 확 쏠렸을 수도 있는데 지금은 다들 좀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라고 했다. 반면 대전에 사는 이모씨(31·남)는 "(안 지사가) 요즘 괜찮아 보이기는 한다. 충청 후보가 한 명 밖에 안남은 만큼 될 것 같으면 충청 민심이 확 쏠릴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안 지사 캠프 대변인을 맡고 있는 박수현 전 의원은 "안 지사가 지역 정서 같은 기존의 정치공학적 접근을 거부하지만 '충청대망론'도 현실이 아니냐"며 "반 전 사무총장이 불출마하면서 지역 정서가 쏠리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문 전 대표의 '대세론'에 맞서 안 지사 이름이 충청에서 본격 회자되기 시작한 만큼 안 지사가 지지율을 더 끌어올릴 경우 '차차기 프레임'을 깨면서 충청 민심에도 불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 국회의원 7명 중 4명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대전이나 안 지사가 7년 간의 도정을 통해 '텃밭'을 다진 충남과는 달리 '여권 성향'이 더 강한 충북(지역구 국회의원 8명 중 새누리당 5명)은 반 전 사무총장 사퇴에 더욱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충북 청주 육거리시장에서 만난 오모씨(72·남)는 "이회창도 못해준 걸 반기문이 해줄 줄 알았는데 허탈하다"며 "그래도 지금까지 야당을 찍은 적이 없다 보니 요즘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황교안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충북 영동군에 사는 윤모씨(70·남) 역시 "평생 '1번'밖에 찍은 적이 없다. 사실 이제 남은 후보 중 그나마 문 전 대표가 똘똘해보이기는 것 같아 고민인데 황 권한대행이 나오면 다시 고민할 것 같다"고 했다.
반면 안 지사가 시간이 지나면 '충청대망론'
[대전 = 조한필 기자 / 정석환 기자/ 서울 = 김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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