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김정남 피살 사건에 대해 '남조선 당국이 벌려놓은 반(反) 공화국 모략소동'이라는 공식입장을 사건 발생이후 열흘만에 처음으로 내놨다. 북한은 김정남 이름을 거론하지 않은채, 이 사건을 '북한 공화국 공민의 쇼크사'로 정의했다.
북한은 23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된 '조선법률가위원회 대변인 담화'에서 "지난 2월 13일 말레이시아에서 외교여권 소지자인 우리 공화국 공민이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갑자기 쇼크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이송되던 도중 사망한 것은 뜻밖의 불상사가 아닐수 없다"고 밝혔다.
이 담화는 말레이시아 외무성과 병원 측이 사건 초기 '심장쇼크에 의한 사망'임을 확인해 시신 이관을 요구했으나, 한국 보수언론이 '독살'을 주장한 뒤 "말레이시아 비밀경찰이 개입하여 (중략) 시신부검 문제를 제기하면서부터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김정남이 심장마비 등 단순 쇼크사로 죽었는데, 한국 정부와 언론이 이를 독살로 몰고가면서 부검과 시신인도 등 이후 절차가 북한의 요구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생떼'식 주장을 반복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같은 태도가 예상된 수순으로 사건을 덮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법적인 논리 싸움으로 가면서 사건을 영구미제화 시키려는 의도"라며 "이를 위한 첫걸음을 뗀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말레이 정부의 부검 강행은)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에 대한 노골적인 침해이고 인권에 대한 난폭한 유린이며 인륜도덕에도 어긋나는 반인륜적인 행위"라며 "말레이시아 측의 부당한 행위들이 남조선 당국이 벌려놓은 반(反)공화국 모략소동과 때를 같이하여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지금껏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관을 통해 적반하장 격 주장을 해왔으나, 김정남 암살건이 점차 중국·말레이·북한의 외교전 양상으로 치닫자 사건 발생 열흘만에 평양서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관련해 정부는 외교무대에서 북한의 '규범 위반'과 '인권 침해'를 집중적으로 제기할 방침이다. 정부는 오는 27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34차 유엔 인권이사회 '고위급 회기'에서 자국민에 대한 북한 정권의 인권 유린을 지적하는 맥락에서 김정남 피살 사건을 거론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말레이 경찰은 김한솔 등 김정남 유족이 말레이 현지로 와서 DNA 샘플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마카오 방문'이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현지 중국어매체들은 말레이시아 당국이 23일 경찰관 3명을 마카오에 파견, 현지 인터폴과 공조로 김한솔 등 김정남 자녀의 DNA 샘플을 채취한 다음 쿠알라룸푸르에서 피살자의 시신이 김정남인지를 확인하기로 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마카오 경찰청은 "마카오에 경찰팀을 보내지 않았다. 최소한 아직은 아니다. 김정남 유가족들에게 조금 더 시간을 줄 것이다(a little longer)"라고 해명했다. 말레이 경찰이 아직 마카오에 파견된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기간이 지나도 유족이 말레이에 오지 않을 경우 마카오로 직접 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쿠알라룸푸르 = 박태인 기자 / 서울 = 전범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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