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중진 의원들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오찬에서 쓴소리를 했다. 다음달 정기국회 시작을 앞두고 당청이 의기투합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자리였지만, 당 중진들은 문재인정부가 높은 지지율에 도취돼선 안된다고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또 새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중 명분은 옳지만 피해보는 국민들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며, 세심한 정책 설계를 주문하기도 했다.
이해찬 의원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문 대통령과 여당 의원 전원과의 오찬에서 "지난 100일을 되돌아보니 좀 더 정책적으로 섬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서울시 전역을 투기지역으로 선정하다 보니 피해보는 곳도 있었다. 좀 더 세심하게 정책을 고민해 주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이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은 8·2부동산대책으로 대출 장벽이 높아지고 청약 규제가 강화된 탓에 실수요자들의 내집마련이 어렵게 됐다는 국민 여론을 전한 것이다. 참여정부 때 국무총리를 역임하며 실세 총리로 불렸던 이 의원은 문재인정부에서도 막후에서 역할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6선인 문희상 의원은 높은 지지율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의원은 "잘하고 있을 때 조심해야 한다. 교만에 빠지면 희망이 없다"면서 "뭘 잘못했는지 늘 자성하고, 새 길을 모색하면 청사에 빛나는 3기 민주정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예결위원장을 맡고 있는 백재현 의원은 문재인정부가 이미 사회적으로 찬반이 첨예한 정책들을 다수 쏟아낸 만큼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점을 밝혔다. 백 의원은 "이슈(가 있는) 예산일 수록 여야 합의가 어렵다"면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최저임금, 178조원 재원 대책, 법인세 인상, 부동산 대책 등 많은 이슈가 있다.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이슈를 (더)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당내 중국통인 5선의 박병선 의원은 최근 한중관계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부가 중심을 잡고 서두르지 않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오는 11월 제19차 당대회 때 권력강화를 노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으로선 이 때까지 한중관계 개선에 나서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박 의원은 "중국이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있는데,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시기"라며 "당대회 후 한중관계의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당 대회가 끝날 때까지 한중관계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도 이날 오찬에서 정책 그 자체가 목표일 순 없다며, 국민들의 삶의 개선을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두 번의 민주정부를 경험하면서 가치만 가지고는 국민들의 지지와 평가를 받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며 "지금부터는 실적과 성과를 통해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국정 평가 시 안보·남북관계와 경제·복지는 구분해서 평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안보와 남북관계는 금방 성과가 나오기 어렵다. 좀 길게 봐야 한다"고 한 반면 "경제나 복지는 국민들이 체검하는 실적과 성과를 금방 요구받는 만큼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특히 복지분야에 관해선
문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와 청와대 회동을 한 적은 있지만, 여당 의원 전원을 청와대로 불러 식사를 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이날 오찬은 1시간 49분간 진행됐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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