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항공기 출현! 긴급 잠항!"
선체가 갑자기 앞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승조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정해진 위치로 움직여 숙지한 임무를 수행했다. 지난 12일 제주 해군기지 남방 해역에 있던 잠수함 이억기함(1200t급). 해군기지 부두에서 8㎞가량 수중으로 이동하던 중 잠망경에 가상의 적 항공기가 포착된 것이다. 가상의 적 대잠작전 항공기를 발견하자 이억기함 선체는 신속히 깊은 바다 속으로 내려갔다. 길이 56m의 기다란 선체가 앞으로 쏠렸지만 승조원들은 익숙한 상황인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함장인 강병오(해사 52기) 중령의 명령에 따라 조타기로 잠수함을 운전하는 타수가 깊은 바다로 잠수함을 몰며 "16m, 18m, 20m, 40m 통과", "목표심도 잡기 끝"이라고 외쳤다.
또 긴급 상황이 벌어졌다. "적 함정 출현! 어뢰 발사 준비!" 승조원들이 음향센서를 이용해 16㎞ 전방의 적 수상함의 위치를 식별하고 12㎞ 앞에서 어뢰를 발사하는 장면을 실전과 동일하게 연출했다. 강 함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무장관이 독일제 SUT 중어뢰 발사 버튼을 눌렀다. 잠수함 음향센서에 의해 적 수상함을 명중시킨 어뢰 폭음이 감지되자 잠망경을 올려 최종 확인했다. 비록 가상훈련이었지만 좁은 함내에서 분초를 다투며 진행되는 상황에 가슴이 뛰고 손에 땀이 날 정도였다.
해군은 209급(1200t급) 잠수함의 수중 기동과 수중작전 상황 등을 처음으로 국내 언론에 공개했다. 군이 보유한 전략무기의 하나인 잠수함은 좀처럼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 군 당국은 북한의 연이은 도발에 대한 강한 응징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국군의 날을 앞두고 잠수함 내부가 외부에 알려진 것이다. 잠수함 승조원들의 수중 전투태세와 함 내부 생활이 공개된 것은 해군의 잠수함 운용 25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디젤 연료와 축전지를 사용하는 209급 잠수함은 연료 보급 없이 하와이까지 왕복할 수 있는 항속 능력을 갖췄다. 최대 수중 250m 이상 내려가 작전할 수 있으며 최대속력은 약 20노트(시속 40㎞가량)에 달한다. 국산 중어뢰 백상어와 SUT 중어뢰, 잠대함 하푼 유도탄을 탑재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우도 수군절도사를 지낸 이억기 장군(1561~1597)의 이름을 딴 이억기함은 9척이 건조되는 209급의 마지막 잠수함이다. 대우조선에서 국내기술로 건조되어 2001년 12월 취역했다.
해군은 잠수함 승조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도 여과 없이 공개했다. 잠수함 내에서는 세탁을 할 수 없어 빨랫감은 봉지에 밀봉해 놓고, 입항 후 집으로 가져간다. 몇 주간 항해에도 담배를 피울 수 없고, 휴대전화 사용이나 TV 시청도 불가능하다. 보안 인가를 받은 DVD 정도를 반입할 수 있다. 바닷물을 정화한 물을 사용하는 데 그나마 아껴 써야 하므로 샤워는 주 1회, 10분 정도로 제한된다. 평소 물티슈를 이용해 몸을 닦
해군은 2020년대 초반 우리 기술로 설계한 3000t급 '장보고-III' 잠수함도 도입할 계획이다. 군사전문가들은 최근 위협이 커지고 있는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대해 3000t급 잠수함이 가장 효과적인 대응수단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안두원 기자 / 제주 = 국방부 공동 취재단]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