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남측 항공기(민간·군용)가 북측 영공을 비행한 것이 80차례에 이른 것으로 확인됐다. 2017년 남측 국적 항공기가 북측 영공인 평양 비행정보구역을 오간적이 단 한차례도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1년 만에 하늘길을 통한 왕래도 크게 늘어난 셈이다.
최근 매일경제가 국토교통부 항공교통본부로부터 입수한 '평양 비행정보구역 운항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남측 항공기는 북측 영공을 78번 운항한간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각국의 영공을 분할해 비행정보구역(FIR)으로 지정하고 있는데 북측은 '평양 비행정보구역'으로, 남측은 '인천 비행정보구역'으로 명명하고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남측 항공기가 북측 하늘길을 열고 비행한 것은 지난 1월이다. 당시 2차례 북측 영공을 비행한 것을 시작으로 대북 특사단이 평양을 방문한 지난 3월에는 남측 국적기가 10차례 평양 비행정보구역을 통해 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운항횟수를 기록한 것은 지난 11월이었다. 비행 횟수가 32회에 이르는데 이는 당시 북측에 제주산 감귤을 실어 나르기 위해 운항했던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해외 국적기로 범위를 넓힐 경우 지난해 남북 영공을 오가며 비행한 횟수는 총 4892건에 이른다. 4421차례 비행한 러시아가 횟수가 가장 많았고 대만(415회), 독일(249회), 네덜란드(135회), 한국(78회) 순이었다.
현재 남북 영공인 인천·평양 비행정보구역을 오가는 '정기 노선'을 둔 나라는 러시아·대만·네덜란드·독일 4개국의 13개 항공사였다. 러시아의 경우 에어브리지카고, 볼가항공, 오로라, 시베리안, 아바칸, 아트란, 에어야쿠티아, 페가수에어 등의 항공사가 남북 영공을 오갔으며 대만(다이너스티·에바), 독일(루프트한자·루프타한자카고), 네덜란드(KLM)의 항공기도 같은 식으로 비행했다.
하지만 남북 항로를 이용하는 정기 노선을 둔 항공사는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해에는 6개국 16개 항공사가 남북 영공을 이용했는데 여기에는 미국과 프랑스 항공사가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미국과 프랑스는 더 이상 북측 영공을 지나는 노선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지난해 남북 하늘길을 오가며 비행하는 횟수가 대폭 줄었는데 이는 정기 노선을 없앴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7년 미국 국적 항공기는 253차례 남북 비행정보구역을 오갔지만 지난해에는 단 8대에 그쳤다. 정기 항로가 없어진 대신 미북 고위급 회담 등 일시적 이벤트가 있을 때만 전세기를 운항했기 때문이다. 앞서 미국연방항공청은 "미국 국적 항공기는 (별도 통보가 없으면) 2020년 9월까지 평양 비행정보구역을 통과해선 안 된다"고 한 바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역시 결의 2321호를 통해 북측에서 출발한 항공기의 화물 검색을 의무화하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10개국 25개 항공사, 2015년 17개국 34개 항공사가 인천·평양 비행정보구역을 이용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숫자는 해마다 줄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영공통과료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인접해 있는 중국의 경우 평양·인천 비행정보구역을 오가며 비행한 횟수가 단 1차례에 그쳤는데 이는 중국이 해당 노선을 이용하는 정기 여객편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항공교통본부 관계자는 "북측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자료에 근거해 공역을 통과하는 항공기에 대해 최대이륙중량에 따라 최저 90유로 최대 685유로까지 부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항공기 자체 최대이륙중량 79t인 '보잉 737-800' 기종에 대해 북측은 235유로의 영공통과료를 부과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항공업계에서는 영공통과료를 감안하더라도 북측이 평양 비행정보구역(FIR)을 개방할 경우 경제적 효과가 더 클 것이라며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 국내 항공사들은 연간 2140만달러(한화 약 240억) 이상의 유류비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고 보고 있다. 운항 시간도 연간 총 3900여 시간 단축할 수 있다는 결과도 있다.
현재 남측 비행기가 유럽·미주로 가려면 북측 영공을 피해 중국과 일본 등으로 우회해야 하는데 항로 각도만 살짝 틀어도 거리는 수백㎞ 늘어나는 경우가 생긴다. 가령 인천에서 유럽으로 갈 때는 북측 영공을 피해 중국쪽으로 우회해 간다. 또 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캄차카반도 방향)나 미주로 갈 때도 평양 비행정보구역을 피해 북측에서 멀리 떨어진 항공로를 택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법학회에서는 국내 항공사들이 북한 영공을 통과할 경우 인천-미주노선 운항은 200∼500㎞를 절약해 미 동부지역까지는 34분, 서부지역 비행시간이 20분 정도 단축될 전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갈 때도 북한 영공이 열린다면 비행시간을 40분 정도 절약할 수 있으며 사할린 지역도 최대 20분가량의 비행시간을 절약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남북 직항로 개설은 이미 지난 2007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10·4 선언에서 합의가 이뤄진 바 있다.
최근 남북은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남북항공 실무회의'를 열기도 했다. 남북은 동·서해 국제항공로 연결을 계속해서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 앞서 북측은 지난 2월 국제 항공 노선을 개설을 요청하며 ICAO에 평양 비행정보구역(FIR)과 인천 비행정보구역을 잇는 항공로(ATS route)
앞서 남북은 동해안을 지나는 국제항공로를 개설한 바 있지만 지난 2010년 '5.24조치'로 북측 영공 통과 전면 금지가 내려져 이후 일본쪽으로 돌아가고 있다. 향후 남북항로의 개설 논의가 본격화할 경우 북측 백두산에 접근하는 항공로인 삼지연 공항 활용 방안 등이 검토될 가능성이 있다.
[김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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