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럽게 생각하십니까?
최근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설문조사를 보니 '한국 국민인 것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가?’란 질문에 응답자의 83.6%가 '자랑스럽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실제 한국 사회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인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우리 사회 '신뢰’ 항목에 대한 평가에서 부정적 답변은 28%로, 긍정적 답변 9.2%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배려와 포용'에서도 부정적 평가 39.2%로 긍정적 답변 4.6%를 압도했습니다.
한국 사람인 것은 자랑스러운데, 여전히 한국 사회는 뭔가 문제가 많다는 뜻일까요?
이렇게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높은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논란이 되는 고위층 성 접대 의혹도 우리 사회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이 화면을 보시죠.
강원도 원주에 있는 한 별장입니다.
잘 가꿔진 정원에 수영장까지, 보기에도 외국영화에서나 봄 직한 호화 별장입니다.
건설업자 윤 모씨의 별장인데, 윤 씨는 사회지도층 인사를 주말에 이 별장으로 불러 파티를 열고 여성을 동원해 성 접대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전 현직 고위 공무원에서부터 병원장, 금융계 인사, 연예인, 판·검사, 경찰 간부, 언론인까지 그야말로 사회 지도층 인사들입니다.
▶ 인터뷰 : 이 모 씨 / 인근 주민
- "40-50대 여자들인데 고급 차들 타고 어떤 때는 에쿠스 같은 것도 타고 그런 여자들이 이렇게 왔다갔다하는 것도 몇 번 봤어요."
윤 씨가 마련한 술잔치에 참석한 인물은 어림잡아 30여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윤 씨는 이들의 성관계 장면과 적나라한 치부의 현장을 동영상으로 찍어 차량에 보관하다 다른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에 꼬리가 잡혔습니다.
윤 씨는 왜 이런 사회지도층 인사를 호화별장으로 초대해 성 접대를 하고 골프 접대를 했을까요?
그리고 동영상은 무슨 목적으로 찍었을까요?
경찰이 성 접대 동원돼 여성을 소환하고 관련자 진술을 확보했다는 소식이 들리니 곧 실체가 드러나겠죠.
통속적으로 생각해보면, 건설업자인 윤 씨는 사업상 목적으로 고위 공직자와 금융계 인사, 검찰과 경찰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접대했을 겁니다.
그들로부터 건설 수주를 받고, 대출을 받는 편의를 받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들이 자신의 청탁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협박용으로 동영상을 찍어 뒀을 겁니다.
실제로 윤 씨는 사교육업체를 운영하는 권 씨와 성관계를 갖고 동영상을 몰래 찍고 나서 권 씨로부터 15억 원과 고급 승용차를 갈취한 혐의로 고발당한 상태입니다.
어쨌거나 이번 사건을 보면 우리 사회 지도층인사들의 추악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피땀 흘려 성실히 가는 서민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합니다.
'아!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저런 식으로 사업하고, 저런 식으로 노는구나, 죄를 지어도 저렇게 법망을 빠져나가는 구나'
사회 지도층들의 이런 행태가 정말 극소수의 문제일지, 아니면 더 큰 빙산의 일각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추측건대, 이런 일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을 듯합니다.
그럴수록 한국 사회에 대한 신뢰는 떨어지고 사회 지도층에 대한 불신은 깊어갈 겁니다.
한국사회에 실망한 사람은 또 있습니다.
김종훈 전 미래부 장관 후보자는 조선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나는 너무 순진했다'고 토로했습니다.
'약 2주간 한국 사회 한복판에 있으면서
한쪽이 피를 봐야 하는 정치와 뿌리깊은 관료주의는 나 같은 외부인을 받아들여 새 부처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지금(한국 정치와 사회에 대해)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 아마 장관 제의를 거절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 후보자가 한국을 떠나면서 한 말을 다시 들어볼까요?
▶ 인터뷰 : 김종훈 /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3월4일)
- "제가 조국을 위해 바치려고 하던 모든 것이 무너지고,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을 더는 지켜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 면담 거부하는 야당과 정권 난맥상 보면서 제가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는 마음을 지켜낼 수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던 마음을 접으려고 합니다."
김 후보자는 특히 부인이 소유한 건물에 유흥주점이 있고, 여기서 성매매 이뤄진다는 언론 보도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가족에 대한 추측성 주장이 나오는 것이 불쾌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한국의 역동적인 문화를 사랑하지만, 이런 건 상관 없는 것이다'
김 후보자 말처럼 한국 사회는 대단히 역동적입니다.
그 역동성이야말로 전쟁의 폐허 위에서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한 힘이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만든 힘입니다.
그러나 그 역동성의 이면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과주의와 나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타인의 삶은 무시해도 좋다는 삐뚤어진 개인주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진 자들은 가진 자들끼리만 어울리고,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일반인들과 유리된 그들만의 상류계를 구축해 놓은 듯합니다.
정치는 낮은 곳이 아니라 높은 곳을 향해 있고, 정치인들은 국민의 이익이 아닌 그들의 이익을 위해 목청을 높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한국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