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중부 명문 주립대에서 금속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오모씨(57)는 A사 등 3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2013년 1월부터 지난 8월까지 ‘제2세대 고온 초전도체접합기술 개발 및 국제표준화’ 등 국책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서울산업진흥원 등 6곳으로부터 11억 원 상당의 지원금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이 수행한 과제는 기존 과제의 이름 또는 내용 일부만 수정해 제출한 이른바 ‘중복과제’로 함량 미달이었다. A사가 설립한 나머지 페이퍼컴퍼니 2곳은 각 각의 법인 명의 계좌를 이용해 자금을 세탁하는 통로였다.
앞의 사례처럼 국가 R&D 보조금 수십억 원이 4년 동안 또 다시 줄줄 샌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엔 해외 명문 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인재들이 범행을 주도했다. 중복과제 신청, 허위 거래 조작은 물론 보조금 멘토로 활동하면서 거래 업체에 허위 보조금 신청을 부추기는 ‘막장’ 행위까지 확인됐다.
인천지검 외사부(부장검사 최용훈)는 연구개발(R&D)분야 국가출연 보조금을 받아 가로채고 이를 숨기기 위해 대규모 허위거래를 일삼은 혐의(사기 등)로 A사 대표 오모씨(57) 등 3개 업체 대표와 A사 이사(57) 등 4명을 구속기소하고, 3개사 임원 4명을 불구속기소 했다고 20일 밝혔다. 이 가운데 오씨 등 5명은 미국 영국 소재 명문 대학에서 금속공학, 기계공학 등의 박사학위를 받은 해외파 인재들이다.
오씨 등은 2011년부터 지난 10월 사이에 한국기술벤처재단, 한국사업기술평가관리원, 한국벤처투자, 서울산업진흥원,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고용노동청,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등 7개 R&D 보조금 운용기관으로부터 21억 원 상당의 보조금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의 범행 수법을 보면 중복과제 신청은 애교에 불과했다. 실물거래가 없는 허위 거래처를 만들어 연구지원금이 입금되게 한 뒤 차명계좌로 돌려받거나, 일부 소액 거래처에 대해서는 과대계상한 연구지원금이 입금되도록 한 뒤 차액을 돌려받아 챙겼다. 이를 감추기 위해 허위 용역계약서, 허위 매입세금계산서를 증빙자료로 제출하기도 했다.
수원 소재 B사는 R&D 운용기관 실사에 대비해 최소한의 자금으로 저가 장비를 마련하고, 부천 소재 C사는 3억3000만원의 연구비를 지원 받고도 5 만원 상당의 전극 8개를 실사 대비용으로 만든게 전부였다.
이들은 또 신규 연구 인력에 지원하는 인건비를 가로채기 위해 친인척 등을 허위로 동원하거나, 외부 투자자를 유치한 것 처럼 꾸며 ‘매칭(Matching)’ 방식으로 연구지원금을 빼돌리기도 했다.
경영난에 처한 일부 업체는 연구과제와 무관한 회사 부채를 정당한 거래로 위장해 채무를 변제하는데 사용했다. 마치 연구과제에 필요한 장비를 구입하는 것 처럼 허위 세금계산서를 작성하고, 정밀 심사에 대비해 소액의 세금계산서까지 여러장 작성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공학박사 학위 소지자들은 기술 연구개발은 하지 않고 연구비 신청만 전담하면서 국책연구과제 목록을 관리하는 국책과제 전문가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오씨는 정부매칭투자, 엔젤투자유치 등 투자유치경험이 풍부한 경영자, 투자유치 전문가(보조금 멘토)를 자처하며 거래업체에 허위 보조금 신청을 부추겼고, 오씨가 대표로 있는 A사는 국책연구과제 수행 경력을 일반 국민을 상대로 장래 가치가 희박한 투자를 유인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김한수 인천지검 2차장검사
[지홍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