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불황은 처음입니다. 열심히 기계를 돌려야 하는데 직원 해고를 고민해야 할 판이니…”
연말이면 한철 장사로 ‘반짝 매출’을 거두는 달력인쇄업체들에 구조조정의 삭풍이 불고 있다.
단골이자 ‘큰손’고객인 기업들이 지난해보다 수량을 크게 낮추거나 아예 주문을 포기하면서 극심한 불경기에 신음하고 있는 것. 이로 인해 달력인쇄의 메카로 불리는 서울 을지로 일대 인쇄골목에서는 폐업하는 업체들이 속출하고 있다.
20일 서울인쇄협동조합에 따르면 최근 수년 간 폐업 업체가 속출하면서 전체 2000개의 회원사 중 600개가 사라지고 1400개만 남은 상황이다. 조합 관계자는 “10년 전 시중에서 5000원을 받던 종이달력 가격이 지금 2500원으로 반토막이 나고 종이값과 인건비 등 원가는 오르면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폐업을 선택한 업체들이 올해 속출했다”고 전했다.
달력인쇄 업체들에 ‘구세주’ 같은 존재인 시중은행들은 물론이고 지역상권 내 수입이 좋은 ‘알짜’ 소상공인들 중에서도 올해 홍보·마케팅용 달력 주문을 포기한 곳이 적지 않다는 전언이다. 실제로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시중은행 지점 관계자는 “지점 당 3000개씩 본점에서 내려왔던 달력 수량이 올해에는 절반도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큰손인 대기업들이 주문 수량을 줄이는 동시에 가격이 싼 저품질 종이를 선택하는 등 ‘저사양’ 달력을 요구하면서 인쇄업계 연말 달력 경기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설명이다.
을지로에서 40년 동안 인쇄소를 운영해온 주모 씨(55)는 “싸구려 달력 수요로 수익률이 반토막이 아닌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며 “이 때문에 직원 세 명을 모두 해고하고 나 혼자서 기계를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인쇄기계의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열 평 남짓한 이 인쇄소의 유리창에는 ‘공장 함께 쓰실 분‘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충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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