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르륵 드르르륵’
아침부터 휴대전화 문자 진동소리가 요란하다. 11개월 된 아들이 두발로 섰다는 사진을 카카오톡 방에 올린 직후다. 아직 발걸음을 떼 걸은 것도 아닌데 반응이 뜨겁다. 내 딸의 아들이자 첫 손자이며 또 느즈막히 결혼한 사위의 아들이기에 가능한 가족 채팅방에서다.
휴대전화 안에 여러 카톡방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24시간 ‘애니타임’ 대화가 가능한 곳은 가족 채팅방이다. 멀리 떨어져 사시는 부모님과 손자 크는 기쁨을 공유하기 위해 만든 방이 벌써 1년이 다 돼간다. 다행히 채팅방을 빠져나간 회원(?) 없이 다양한 이야기꺼리로 흥행몰이 중이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부모님에게 카톡방 개념을 설명하고, 초대하고, 수락하는 일련의 기계적인 과정이 그랬다. 더 어색했던 이유는 학교와 직장생활로 10년 이상 떨어져살다가 어느 순간 ‘엄마’가 된 딸로서 부모님과 도대체 어떤 얘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나눠야할 지 감을 잡기가 어려워서다.
평소 살가운 성격이 아닌 탓에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도 간단히 안부를 묻는 것으로 끝난 나였다. 괜히 카톡방을 만든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됐다. 부모님 역시 평소 “밥은 먹었니?”, “성호는?” 이 두마디면 안부 확인을 끝내고 전화를 끊기 일쑤인데…
그럼에도 아기 사진을 휴대전화 문자로 일일이 보내드리기도 뭣하고, 주변에서 많이 한다기에 스타트를 끊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내 걱정은 다 기우에 불과했다. 손자 얘기 한마디면, 사진 한장이면 카톡방에서 대화가 끊임없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아기의 손짓, 발짓 하나에 감탄사를 연발하셨다. 성장 단계 단계마다 한 마디씩 해주시기 바뻤다. 나를 키우면서 어땠는지 추억에 젖는 얘기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무뚝뚝했던 난 “오늘은 이유식을 엄청 잘 먹었어요”, “잠은 천사처럼 잘 잤어요” 등 설명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애 발육이 남다르다”라거나 “옹알이 하는 걸 보니 다른 애들보다 말을 빠르게 할 것 같다”란 폭풍 자식 자랑이 이어졌다 . 자식의 자식 자랑에 부모님은 화려한 이모티콘까지 보내시며 기꺼이 동참해 주셨다.
사실 육아와 관련된 이야기는 일단 같이 아기를 키우는 입장이 아니고서는 공감대를 이루기가 참 쉽지 않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시도 때도 없이 육아의 어려움을 얘기하는 것은 민폐 중의 민폐다. 같이 아기를 키우고 있어도 아기 개월수에 따라 내용이 달라 서로의 얘기만 늘어놓다 정작 고민 해결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육아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기억이 잘 안난다”란 말을 듣기가 쉬운데, 지금 당장 내 옆에서 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교를 다니며 자라고 있는 아이를 보는 일에 집중하다보면 당연한 일 같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육아 얘기를 공유할만한 집단은 오롯이 내 얘기에 관심을 기울여 줄 수 있는 가족이 최고다. 의견이 다를 때가 있지만 부모님으로부터 전수받는 육아 꿀팁도 참 많아 좋다.
채팅방에서 육아 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손자 얘기로 창을 열었지만 서로 간의 안부와 일정을 자주 묻게 되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취향을 알아갈 수 있다. 주고받는 문자나 사진, 좋은 글귀, 이미지 등을 통해서 말이다. 명절과 연휴 등을 맞아 면대면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그런 의미에서 ‘황혼 육아’로 고생하는 부모님과 가족끼리 단체 카톡방 개설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매일매일 얼굴을 맞대고 사는데 뭘 굳이 채팅방까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그렇다. 얼굴 맞대고는 차마 하기 쑥스러운 얘기나, 미처 하지 못한 얘기를 채팅방을 매개로 쉽게 할 수 있다. 휴대
성호의 탄생으로 개설된 이 채팅방에 성호가 어서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 적어도 10년은 지난 뒤의 일이겠지만 얼마나 또 다양한 얘기를 나눌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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