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화성의 대명차콜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번개탄을 제조하고있다. <김호영기자> |
유가하락으로 기름을 물 쓰듯 하는 세상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번개탄은 겨울내 온기를 연탄에 기대야 하는 달동네·판자촌 서민에게 없어서는 안될 상비품 중 하나였다. 그러나 서민들 삶의 애환이 닮긴 번개탄은 이제 ‘밉상덩어리’로 전락했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안타까운 자살현장에 시시각각 등장하는 ‘죽음의 불쏘시개’가 된 것이다. 급기야 정부는 아예 번개탄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비치하고 구매를 제한하는 등 초강수 규제책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이런 ‘번개탄 자살 사태’에 또다른 이해당사자가 번개탄 생산업체이다. 지난 11일 기자가 찾아간 경기 화성시 장안면 소재 ‘대명차콜’은 수도권 유일의 번개탄생산 공장으로 국내 유통량의 70%를 생산한다.
몇 번이나 취재를 고사했던 이 회사 김주열(61) 공장장은 착잡한 표정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지난 30 여년간 번개탄 제조업에 몸 담아왔다는 김 공장장은 “지난 달에만 열명 넘게 정리해고 됐다. 이 회사가 문을 연 8년 전에 비해 딱 절반 수준 인원만 남아 일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3년 전 만해도 이 공장은 하루에 10만 장의 번개탄을 찍어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고작 10분의 1 수준인 8000장으로 ‘확’ 줄었다.
이 곳 뿐만 아니다. 십 수년전만 해도 국내에는 120여곳의 제조업체가 있었지만 현재는 5~6곳에 불과하다. 도시가스·기름보일러가 대중화 되는 추세와 함께 동남아 등지에서 쏟아지는 저가 번개탄까지 수입되자 완전 사양길로 접어든 것이다.
대명차콜 역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 회사 이봉수 대표는 “임대료는 커녕, 30명이 안되는 직원들 월급도 제때 못주고 있는 상황이지만 사회 밑바닥 어딘가에선 ‘꼭’ 필요한 물건이라 생각해 ‘빚’으로 ‘빚’을 막아가면서 어렵게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2008년 환경보호와 폐기물처리업의 효율적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라 번개탄 제조시에는 1등급 폐목재만을 사용하게끔 했다. 환경 문제를 고려한 조치였는데 그만큼 원가 부담이 커졌다. 수요 저하로 번개탄의 가격을 올릴 수 없었던 업계들이 줄줄이 폐업신고 또는 도산한 이유다.
그런데 경영난 보다 더 절망적인 게 있다. 5, 6년 전부터 이른바 ‘번개탄 자살’이 언론에 거론되기 시작한 것. 2008년 말 까지만 해도 수십명 수준이었던 그 수는 이제 연간 2000명 수준까지 ‘확’ 늘어버렸다. 이 대표는 “피땀 흘려서 만든 제품이 사람의 생명을 끊는 수단으로 전락한다고 생각해보라”며 “이런 뉴스를 보고나면 몇일 동안 잠이 안 오고 공장문을 아침에 열기 힘들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하소연 했다.
이 대표는 작년부터 경기도청과 협의해 포장지에 “생명은 소중합니다”라는 자살경고 문구를 제품에 넣고 있다. 뭐라도 해봐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대표에게 또다시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보건복지부 등 정부가 올 하반기부터 번개탄 구입을 대폭 제한하는 법안마련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나온 것이다. 마트에선 일반 고객이 쉽게 접근할 수 없도록 별도 자물쇠로 채워선 보관하고 구입시 소비자에 구매용도를 묻고 인터넷 구입도 제한하고 일산화 탄소 배출량을 ‘확’ 줄인 대체상품보급을 하는 등 여러 가지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 어떤 식이든 기존 번개탄은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될 수 밖에 없거나 생산비용이 늘어날 운명에 처하게 됐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이 대표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는 100% 공감한다”며 “그래도 이런 식이면 주로 인터넷으로 대량 주문하는 고기집이나 캠핑장 등에 판매를 사실상 접으라는 얘기”라고 푸념했다.
여러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의견수렴도 없이 정부입장에서 가장 손쉬운 ‘규제’만 자살 방지 대책으로 내놨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도 이런 시각에 공감하고 있다. 김은하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전문상담심리사)는 “문제는 다른 곳에 훨씬 많다”며 “규제를 통한 정책이 효과가 있는가에 대한 근거가 세워지고 실시돼야 하는데, 사전연구가 깊이 있게 이뤄졌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보통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우 갑작스럽게 결심하는 경우가 드물고 대부분 오랜 기간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데 이런 과정 속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안전망과 홍보노력이 병행되야 하는데 정부가 발생비용이 작은 ‘규제’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자살과 무관한 일반 소비자들까지 덩달아 피해를 본다는 지적도 많다.
물론 생명이 걸린 문제인 만큼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면 일단 시행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정신과 전문의) 는 “안성시에선 과거 농약이 자살수단 1위였는데 현재 다양한 관리를 통해 3위로 내려갔다”며 “자살수단을 관리하는 게 외국에서는 상당히 효과적이라는 연구가 다수 있다”고 말했다.
공장문을 나서는 기자의 손을 잡고 이 대표는 ‘딱’ 두가지를 꼭 써달라고 부탁했다. 첫째는 번개탄 자살이 모방성향이
[화성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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