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없다는 뜻의 사자성어입니다.
하루 아침에 변한 가을 날씨에 전기료 누진제와 싸우던 뜨거운 여름은 언제인지도 모르게 벌써 잊혀졌습니다. 해결된 건 하나도 없는데 말이죠.
지난 29일과 30일, 국회에선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 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지난 2011년 첫 사망자가 나온 지 무려 5년 만입니다.
가해 업체만도 10곳 이상으로, 출석을 요청한 증인은 28명이나 됩니다. 핵심은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알고도 그것을 숨기고 판매를 했는지 여부였죠.
가장 주목을 끈 증인은 옥시 레킷벤키저의 영국 본사 관계자였습니다. 하지만 본사가 제품의 유해성을 은폐했다는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아무도 출석하지 않았죠.
그나마 출석이라도 한 아타 샤프달 옥시코리아 대표가 한 말은 'I don't know' 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지난 2010년 자동차 급발진 문제로 대량 리콜사태를 빚었던 일본 도요타의 사장이 미국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잘못을 시인하고, 고개를 숙였던 걸 기억하십니까? 물론 보상도 다 해줬었죠.
이에 비하면 영국 기업, 옥시의 태도에는 화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비단 옥시만 그런것도 아니었죠.
지난 2011년 살균제의 유해성이 적힌 보고서를 조작한 혐의를 받는 국내 최고의 법률 사무소 김앤장 역시 증인으로 청문회에 출석했습니다.
이들은 한 술 더떠 아예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변호인은 의뢰인의 비밀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는건데, 그럼 청문회는 왜 나간걸까요?
원료를 판매한 SK케미칼은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성분을 공기 청정기에도 써 피해가 확산될 수 있다는 말에, '자세히 확인한 후 사과와 보상에 대한 고민을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아예 나오지도 않고, 나와도 묵묵부답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확인한 뒤 보상을 고민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
5년 만에 열린 청문회는 이렇게 허허공공, 아무런 소득없이 끝이 났습니다. 이럴거면 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5년 전, 정부가 급속히 확산된 산모 폐질환 사망 사건의 원인을 가습기 살균제로 꼽은 날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은 '국회의 힘, 대한민국의 힘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잘못하고도 모른 척하는 기업, 잘못한 것을 알고도 모른 채 한 정부, 청문회를 했다고 할 일 다했다고 생각하는 국회만 있을 뿐입니다.
이제 피해자들은 누구한테 기대를 걸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