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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초 서울 광화문광장에 사상 최대 190만 인파가 몰렸던 6차 봇불집회에 등장했던 시민들의 재치 넘치는 깃발. [사진출처 = 페이스북 캡쳐] |
이날 본집회에 앞서 원외 정당인 민중연합당은 시민들에게 ‘황교안도 사퇴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나눠줬다. 피켓 뒷면에 적힌 ‘한상균 이석기에게 자유를’이라는 문구 탓에 박 대통령의 조속한 퇴진을 위해 참가한 시민들이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무죄를 주장하는 꼴이 됐다. 일반 시민들이 작년 민중총궐기대회에서 폭력시위를 주도해 수감된 한 위원장과 내란 선동 혐의로 징역 9년을 선고받은 이 전 의원의 석방을 주장하는 황당한 풍경이 연출된 것이다.
탄핵안 가결이후 변화된 촛불의 초상화는 현장의 깃발만으로도 쉽게 느껴질 정도다. 예전 5차, 6차 집회 때는 일반 시민들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집에서 자발적으로 만들었던 소위 ‘꿀잼 깃발’ 들이 많았다.
곰국연구회(최순실의 곰탕식사를 풍자), 고산병연구회(청와대 비아그라 반입을 풍자), 혼자온사람들(1인 시위 참여자자들), 범야옹연대(반려동물과 함께 집회 나온 사람들), 일못하는사람유니온(일못하는 사람들의 고충을 나누는 모임), 장수풍뎅이연구회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날 집회현장이 사회변혁노동자당(반자본주의 노동·정치단체), 민중연합당(과거 통진당원들의 재건정당), 민주노총 등 정치·노동 단체들의 깃발만 넘쳐나고 피켓들 역시 황교안 대통령 직무대행사퇴, 대기업 재벌 척결, 노동개혁 악법 철폐 등의 투쟁구호들이 넘쳐났다.
일곱 살 난 딸과 함께 이날 광화문 광장을 찾은 강현일 씨(38)는 “어쨌든 황교안 총리도 이 정부와 같이 살아온 사람이니 문제제기는 할 수 있다 생각하지만 한상균·이석기는 노골적인 자신들만의 이해문제 아니냐”며 “순수한 마음으로 나온 시민들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뒤편에는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에게 서명을 받는 시민단체들이 장사진을 쳤다. 국가정보원 해체, 국가보안법 폐지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부터 사법시험 폐지 반대를 주장하는 단체들까지 광장에 집결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냈다. 자주평화통일실천연대는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면서 통일운동 구속자에 대한 모금활동을 펼쳤고 일부 좌파 시민단체들은 사드배치 반대 서명을 진행했다. 민주노총 산하 금소노조는 이순신 장군 동상 옆에 노조 활동을 하다가 사측과의 갈등 등으로 자살한 유성기업 한광호 씨의 분향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탄핵안 통과이후 급속한 촛불현장의 변화들은 집회가 두달 가까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피로도’가 쌓여가고 갈수록 기온이 떨어지는 등 ‘날씨 변수’까지 겹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반 시민들 사이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집회를 지금까지 이끌어온 시민단체나 노동단체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노동법 개혁 저지 등 각종 사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촛불동력을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최근엔 야권 대권주자들과 지지단체들이 집회현장서 설치면서 예비 대통령 경선현장과 같은 분위기도 연출되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식 팬카페 ‘문팬’은 ‘박근혜 탄핵’이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촛불 집회에 참여했다. 시민들이 지나다니는 보행로 한 켠에 마련된 책상에는 ‘가입 대환영’이라는 문구까지 등장했다. 문팬은 기존에 있던 문 전 대표의 4개 팬클럽을 통합해 지난 9월 새로 출범한 조직으로 문 전 대표의 대선 세몰이의 핵심이 될 것으로 관측되는 단체다. 노무현 대통령의 팬카페 ‘노사모’ 처럼 대표적인 야당의 대권 주자로 분류되는 이재명 성남시장의 지지자들도 이 시장의 얼굴과 ‘이사모’라는 문구가 적힌 깃발을 들고 광화문 광장을 활보하기도 했다.
8차례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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