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200㎞ 정도 떨어진 한적한 전원도시 올보르그시의 한 단독주택. 1일 밤 10시경(현지시간) 제복차림의 경찰들이 거칠게 문을 두드린 후 실내로 들어섰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털모자가 달린 점퍼차림의 여성이 수갑을 찬 듯 두 손을 모은 채 경찰에 끌려나왔다.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인 최순실씨 딸이자 이화여대 특혜입학 등 학사농단 사태의 주인공인 정유라(21)씨다. 국내 한 방송사 기자는 정씨에게 "원래 귀국할 생각이었냐. 한국가서 조사받을 생각이었냐" 질문을 던졌지만 한마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경찰차에 탔다. 곧이어 건장한 남성 2명을 비롯해 정씨의 아들로 추정되는 어린이를 안은 한 여성도 뒤따라 나왔다.
지난 9월 최순실 사태 이후 독일에서 최씨와 함께 행적이 묘연해진 정씨는 최씨가 지난 11월 귀국 후 검찰에 구속돼 조사를 받는 와중에도 홀로 끈질긴 도피생활을 두달 넘게 이어왔다. 당초 검찰은 "정씨가 독일에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혀왔지만 정씨가 현지 경찰에 체포된 곳은 결국 매일경제를 비롯한 다수 언론들이 은신처로 지목해왔던 덴마크 였다. 꽁꽁 숨어서 언론과 현지 주민들 눈을 피해왔던 정씨의 도피생활이 막을 내린 건 한국 방송사 기자의 경찰신고 때문이었다.
정씨와 함께 체포된 남성들은 각각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남성들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최씨가 데려간 수행원들일 가능성이 크다.
2일 한국 경찰 관계자는 "당초 최순실씨와 정씨의 현지 조력자로 알려진 데이비드 윤(윤영식)씨는 체포자 명단에 없다"고 밝혔다. 최씨의 또다른 현지 조력자중 한명인 유모씨는 최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회장님(최순실)은 한국에서 데려온 3~4명의 수행원을 늘 정씨에 따라 붙도록 했다"고 말했다.
애초 독일의 자택과 최씨 소유 비덱호텔이 있던 슈미텐에서 국경을 넘어 자동차로 9시간 거리인 덴마크 올보르그시까지 온 과정에서 이들의 조력이 있었을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정씨가 독일을 떠난 것은 지난 해 9월 말 이후로 추정된다. 당시 슈미텐 지역 최씨 자택 이웃들과 최씨가 소유했던 비덱호텔 이웃 주민들이 "9월 말께 건장한 남성들이 대형 이삿짐 차를 갖고와 몇 일에 걸쳐 이삿짐을 날랐다"고 국내 언론들에게 목격담을 털어놨기 때문이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덴마크 내 정확한 입국시기를 확인중"이라고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밝혔다. 이후 한동안 최씨와 정씨의 행방이 묘연했다. 정씨의 행방이 다시 확인된 때와 장소는 지난해 10월 초중순께 덴마크 오덴세 지역. 오덴세는 최씨가 체포된 올보르그시와는 자동차로 3시간 거리다.
당시 매일경제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정씨는 10월 20일부터 나흘간 덴마크 오덴세에서 개최된 국제승마연맹(FEI) 주관 마장마술 대회에 출전할 계획을 갖고, 10월 초·중순께 덴마크로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정씨는 대회 엔트리에까지 포함돼 있었지만 대회 당일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최씨 역시 정씨와 같이 이 곳에 머물고 있다가 한국으로 귀국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최씨의 독일 현지 조력자였던 A씨는 본지와 통화하면서 "정유라씨가 대회를 출전할 때는 항상 모친인 최순실씨와 동행했다"고 털어놨다. 체포 당시 정씨가 머물고 있던 올보르그시는 20분 거리에 있는 '헬그스트랜드 마장마술 승마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헬그스트랜드 마장마술 승마장의 주인인 안드레아스 헬그스트랜드는 정씨가 지난 5월 덴마크 올보르, 6월 독일 하겐 국제대회 당시 사용했던 비타나 5(Vitana V)의 소유주다.
정씨가 삼성 측 지원으로 사용했던 비타나5외에 나머지 2마리 말도 모두 이곳 승마장에서 구입했던 것으로 매일경제 취재결과 확인됐다. 독일에서 도피생활 중에도 보유한 말들을 관리해야 하는 특성상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승마장이 인접한 곳에 은신처를 마련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일각에서는 정씨가 지난달 15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현지 조력자인 데이비드윤(윤영식·48)씨와 동행한 모습이 포착돼 덴마크 은신 이후에도 독일과 덴마크 사이를 오갔다는 분석도 나왔다. 당시 독일 현지 교민 B씨는 정씨와 윤씨 형제,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 2명 등 총 5명이 BMW 5시리즈 차량을 타고 가는 것을 목격하고 사진을 찍어 한국언론에 제보했다. 한 현지 교민은 "최씨가 급히 독일을 떠나면서 재산을 모두 정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씨가 독일을 은밀히 오고 갔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올보르그간 거리는 비행기로 3시간, 자동차로 9시간 거리다.
더불어민주당 노
[서태욱 기자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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