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활을 잘 쏘기로 유명했다. 현대도 마찬가지다. 양궁에서 한국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이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출간된 '무예제보'에는 "조선은 칼 쓰는 법과 창 쓰는 법은 전혀 배우지 않고 오로지 활쏘기만 연습했다"는 구절이 있다. 조선은 군인들의 진급과 포상의 기준으로 활쏘기 성적을 활용했다. 이순신 장군도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동안 '난중일기'를 쓰면서 활쏘기 연습 기록을 모두 264회 남겼다.
조선은 활을 잘 만들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게 조선시대 무관들이 사용하던 각궁이다. 각궁은 나무, 쇠뿔, 힘줄 등을 천연 접착제로 붙여 만든 활이다. 시위를 풀면 거꾸로 뒤집힐 정도로 강한 탄성이 특징이다.
각궁도 여러 종류가 있다. 그 중 산뽕나무와 검은색 물소뿔을 이용해 만든 흑각궁이 가장 성능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흑각궁은 국산 쇠뿔을 이용해 만든 향각궁보다 성능이 우월했지만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검정색 물소뿔의 수급 측면에서 약점을 안고 있었다. 실제 명나라는 전략 물자인 물소뿔의 수출 물량을 1회 교역에 50개로 제한하기도 했다.
조선 수군의 교범인 수조규식에는 각궁의 유효사거리를 90보(약 100m)라고 적혀 있다. 이 책에 나온 조총의 유효사거리는 100보(약 120m)다. 조선 시대 무과시험에는 150보(약 180m)의 거리에서 과녁을 맞히는 종목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무기의 성능을 높이기 위한 연구개발(R&D)이 있었다. 그 결과 탄생한 게 편전이다. 활 대신 화살을 개량해 위력을
[디지털뉴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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