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운명을 가를 21일 새벽. 평소보다 이른 시각인 4시 30분 무렵부터 삼성동 사저 1층의 불이 켜졌다. 헌정사상 첫 탄핵 대통령 신분으로 검찰 포토라인에 서야 하는 초유의 사태로 밤잠을 설친 듯 불빛은 새벽부터 꺼지고 켜지고를 반복했다. 박 전 대통령의 올림머리 담당인 정송주원장은 이날 오전 7시께 또다시 찾아왔다. 평소보다 20분 이른 시간이다.
오전 9시 15분께 사저 차고 밖으로 검은색 에쿠스 리무진 차량이 등장하자 주변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여성 경호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박 전 대통령이 대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달 10일 파면이 결정되고 12일 삼성동 자택으로 들어간 이후 '칩거'를 해오다 이날 처음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복잡한 심경과 달리 박 전 대통령의 표정은 이 집으로 처음 왔을때 처럼 차분했다. 앞서 지난 12일 청와대에서 사저로 이동할 때 입었던 남색 코트 차림 그래로 였다.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단정한 올림머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저 앞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짧게 입장을 표명할 것이란 예상이 나왔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대문 앞에서 잠시 지지자들을 바라보던 대통령은 마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밖에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처럼 "아이고, 많이들 오셨네"라고 혼잣말을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뒷자석에 박 전 대통령을 태운 차량은 앞뒤 경호차량의 호위를 받으며 곧바로 골목을 나섰다.
주변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지지자들은 "대통령님 힘내세요"를 목놓아 외쳤고, 박 전 대통령은 창문을 올린 채 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골목 양쪽에 늘어선 시위대를 통제하기 위해 폴리스라인을 치고 의경들이 길을 확보했다. 이동하는 차량이 골목을 빠져나와 대로변으로 진입하기까지 양복 차림의 경호원들이 차량 옆에 붙어 사방을 살피면서 주변을 경계했다.
골목을 빠져나온 차량은 곧바로 순찰차 4대와 사이드카, 경찰 오토바이 12대의 호위를 받으며 서울 강남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향했다. 차량 행렬은 지하철 9호선 선정릉역 사거리를 거쳐 2호선 선릉역 사거리에서 우회전해 테헤란로에 올라탔다. 그 뒤로 언론 취재차량 수십대가 추격전을 벌였다. 일부 취재차량은 경호 차량 사이를 누비면서 '칼치기'를 하는 상황도 연출됐다. 이날 경찰은 취재 과정에서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례 6건을 적발해 2건을 형사 입건하고, 다른 4건은 법칙금을 부과했다.
박 전 대통령의 차량은 역삼역 사거리와 강남역 사거리를 거쳐 직진하다 검찰청 방면인 서초역 사거리를 지나 오전 9시 23분께 검찰청사 앞에 당도했다. 자택에서 출발한 지 8분만이다. 이동 거리로는 5.5km였다.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으로 검정색 에쿠스 차량이 당도하자 포토라인 주변에 가득 늘어선 취재진이 술렁였다. 차량 문을 열고 박 전 대통령이 청사 앞으로 걸어오자 카메라 셔터 소리가 더욱 커졌다. 청사 앞에 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표정은 비교적 담담했다. 이곳에서 대기 중이던 관계자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띠기도 했다. 포토라인 앞에 서자 박 전 대통령의 표정은 이내 굳어졌다. 취재진 앞에선 그는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딱 29자 발언이 다였다. 파면 이후 박 전 대통령이 본인 육성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앞서 지난해 10월 말 최순실(61·구속기소)씨가 검찰에 소환될 당시처럼 취재진과 뒤엉키는 '대혼란'은 이번엔 없었다.
그러나 전날 측근을 통
[서태욱 기자 /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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